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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재기중소기업개발원 2년…수료생 138명 중 45명 재기 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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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3년11월15일 17시03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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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재기하는 중소기업인]
2011년 재기를 다짐하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던 재기중소기업개발원 1기생.
2년 전 이맘때쯤 열두 명의 사내가 외딴섬에 들어갔다. 경남 통영에서 배로 1시간쯤 걸리는 죽도. 50여 명이 거주하는 작은 섬이다. 그들은 한때 ‘사장님’ 소리를 들었던 전직 최고경영자(CEO)다. 매출 1천억원대 회사를 거느렸던 경영자, 코스닥에 상장한 벤처기업 CEO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실패한 경영자’라는 치욕과 신용불량자(채무불이행자)라는 낙인뿐이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0년, 그들은 세상을 원망하고 자신을 책망하며 살았다.
기자가 죽도에 갔을 당시(2011년 11월 29일) 그들은 섬 생활 23일째였다. 죽도에 입도하며 ‘온갖 근심과 실의에 찌든 얼굴로 난파선을 타는 것 같았다’던 그들의 표정은 밝고 평온했다. 40~60대인 그들은 형광색 점퍼를 입고 수업을 듣고 있었다.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이 무료로 실시하는 ‘실패 중소기업경영자 재기 교육’이었다. 4주간 합숙하며 재기의 의지를 다지는 프로그램으로 국내에서는 처음 하는 시도였다. 그들이 1기생이다.
생활은 흡사 수도승 같았다. 폐교를 리모델링해 만든 연수원 뒷산에 1인용 텐트를 치고 그곳에서 짧은 잠을 청했다. 따뜻한 숙소가 있었지만 편한 잠을 사양했다. 새벽 6시 기상 노래가 울려 퍼지기 전에 대부분 일어나 섬 앞에 펼쳐진 남해바다를 보며 명상을 했다. 식사는 오전 8시, 오후 4시 두 끼만 먹었다. 그리고 ‘명상-경영수업-명상-분임토의-명상’으로 이어지는 생활을 했다.
당시 그들은 기자에게 가슴 아픈 사연을 힘겹게 털어놨다. 침구·화장품 사업을 하던 김성현(가명) 씨는 직원이 900명 넘는 중견기업을 운영했다. 그는 “한때 재벌을 꿈꿨다”고 했다. 하지만 친동생처럼 여겼던 회사 임원이 회사 어음을 사채업체에 넘긴 후 현금을 들고 해외로 도망갔다. 회사는 부도를 맞았다. 김 씨는 “아침에 술, 점심에 술, 저녁에 술로 살았다”며 “그가 가져간 것은 돈이 아니라 내 꿈과 인생”이라고 말했다.
섬유공장을 운영하던 배창호(가명) 씨는 이런 말을 했다. “사업에 실패하면 채무 관계로 얽힌 지인들과 원수지간이 됩니다. 사장님 소리 듣다가 망하면 정서적으로 위축되고 모든 것에 소극적이 되죠. 가족들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데 나에겐 달리 와 닿습니다. 혼자만의 고통이 커지고, 악감정이 생기고…. 이걸 벗어나지 못하면 절대 재기할 수 없어요.”
죽도에 와서 그들은 달라졌다. 스스로 그렇게 말했다. 한 전직 CEO는 “3년 만에 처음으로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더라”고 했다. 전 인터넷 벤처기업 대표 박 사장은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사회의 패잔병이고 루저인데, 그 실패와 실수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곳에서 자신감을 얻었고 패배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 코스닥 상장사 대표는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해 정말 좋다”고 말했다. 연수생들은 그렇게 절박하게 명상하며 마음의 벼랑에서 벗어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마음이 치유됐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4주간의 변화는 놀라웠다.
하지만 그들 앞에는 현실이라는 벽이 놓여 있었다. 그들은 빈털터리였고, 대부분 대표자 연대보증의 덫에 걸려 신용불량자 신세였다. 한번 실패하면 좀처럼 재기할 수 없는 환경, 실패한 경험을 중시하지 않는 사회, 실패 경영자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과 싸워야 했다. 그런 현실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 연수생은 “우리는 담보도 없고 신용불량자”라며 “기술보증이나 신용보증기금에서 대출을 받기는 사실상 어렵다” 고 했다. 다른 연수생은 “현 제도에서는 어쩌면 재기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스타트 라인에 서고, 링 위에 오를 수 있는 실질적인 도움을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섬을 떠났다.
2년이 흘렀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죽도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면서 언론과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늘었다. 벌써 7기 수료생이 나왔다. 죽도를 거쳐간 수료생만 138명. 재기중소기업개발원 한상하 원장은 “수료생 중 45명이 재기에 나섰다”고 말했다.
| |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을”
하지만 아쉬움도 많다. 한 원장은 “수료생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명상하고 공부하며 재기의 의지를 다지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고 했다. 그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책과 지원”이라며 “한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기에 나선 45명은 지금, 현실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 분주히 달리고 있다.
올해 월매출 4천만원 규모의 복지용구 회사로 재창업에 성공한 최봉석(55) 보림제작소 대표는 1기 수료생이었다. 2년 만에 다시 만난 그는 표정부터 달라져 있었다. “밤 11시까지 하루 15시간씩 일하는데, 2년 전엔 이만큼 즐겁게 일한 적이 없었습니다. 술자리도 시시해서 안 가져요.” 무엇이 그의 열정을 되살렸을까? 그는 “자기성찰은 사업 실패로 자신감을 잃은 재도전자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과정”이라며 “죽도에서 풍부한 자기성찰의 기회를 갖게 돼 재기에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최근엔 수료생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사업 교류의 장을 연다. 풍부한 정보를 나누고 인적 네트워크를 다지게 된 것도 크나큰 소득이다.
출처 = 공감위클리 |
편집부
(kfsw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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