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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크림 빵 먹을 때의 달콤한 맛 지금도 잊지 못해
등록날짜 [ 2014년01월09일 07시03분 ]

필자는 어른이 되면 제빵사가 되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어렸을 때 빵을 좋아했습니다.

삼립 크림빵을 반으로 나눈 다음 귀퉁이 부분을 뜯어 빵 가운데 엄지 손톱만한 크기로 봉곳 솟아오른 하얀 크림을 조금씩 맨 빵에 묻혀가며 먹을 때의 그 달콤한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크림빵은 아무리 크림을 아껴 먹으려 해도 언제나 빵에 비해 크림이 부족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생크림 케이크를 먹을 때면 일부러 크림을 덜어내곤 하지만 그때의 크림빵은 빵에 비해 크림의 양이 치사하리만큼 적어서 어린 마음에 ‘크림 한번 원없이 먹어보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혀가 아리도록 달았던, 흰색보다 더 하얗던 삼립 크림빵 속의 크림에 대한 향수는 너무 깊어서인지 어린 시절 이후 더 좋고 맛있다는 크림빵을 수없이 먹어봤음에도 그때 그 크림만큼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삼립 크림빵보다 먼저 나온 것이 삼립 단팥빵입니다. 필자가 동네 어귀 구멍가게에서 단팥빵을 처음으로 사 먹기 시작할 때의 가격이 15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 팔각정이 그려진 50원짜리 지폐를 들고 가게에 가면 꽤 많은 군것질 거리를 사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40여 년 전의 단팥빵은 지금처럼 동그랗지도, 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지도 않았습니다.

 

약간 길쭉한 모양에 흰깨 또는 검은깨가 살짝 뿌려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단팥빵을 시작으로 크림빵, 아폴로 카스테라, 보름달 등등이 1970년 대 초반 동네 어귀 구멍가게에 진열된 빵의 종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면서 덩치만 크고 속은 부실한 삼립, 샤니, 콘티 같은 공장표 빵들이 제과점 빵들 앞에서 속속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제과점에서 갓 구워낸 빵들은 한마디로 신세계였습니다.

 

게다가 빵 속에 넘치게 들어 있는 크림은 눈물이 날 정도로 황홀한 경험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특히, 프라이팬 크기의 넓적한 소보루 빵 사이에 딸기잼을 듬뿍 넣은 맘모스빵은 필자가 꼽는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입니다.

이 맘모스빵으로 인해 공장빵은 돌이킬 수 없는 쇠퇴기를 맞이하게 됐던 것입니다.

 

고려당, 태극당, 뉴욕제과, 독일빵집 같은 이름있는 제과점과 동네의 작은 빵집들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영화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과거 일본에서 들어온 제빵기술로 만든 빵은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데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파리크라상, 파리바게트가 등장하면서 프랑스 빵인 바게트와 크로아상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게 됩니다.

 

이 파리크라상과 파리바게트는 고급화된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급격히 성장하게 되었고 그 결과 제빵업계의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늘 해오던 대로 빵을 만들고 영업을 해오던 동네 빵집들은 이 거대한 프랜차이즈에 편입되거나 도태되었습니다.

 

마치 월마트가 미국의 소매점들을 붕괴시키고 그 점주들을 종업원으로 만든 것처럼 대한민국의 동네 빵집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그 와중에 또 하나의 대기업이 끼어들어 대한민국 프랜차이즈 빵집의 양대 산맥이 만들어졌습니다.

모 드라마에서 ‘따우스레스 자우르스’라는 이름으로 불려진 뚜레주르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덩치가 커진 프렌차이즈 빵집은 과거 빵공장과 유사한 형태로 변해갔습니다. 본사의 빵공장에서 제조한 완제품을 분점들이 받아서 되파는 형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분점에서 구워내는 몇 안 되는 빵 역시 본사에서 파견하는 제빵사가 본사에서 공급하는 재료로 만들어냅니다.

 

이들 프렌차이즈 빵집의 제빵사가 되는 방법은 프렌차이즈 본사에서 운영하는 석 달 정도의 연수과정을 마치면 됩니다.

프렌차이즈 업체에서 만드는 빵만 잘 만들 수 있으면 제빵사로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태원 제일기획 건너편에 ‘오월의 종’이라는 빵집이 있습니다. 문을 연 지 몇 년 되지 않은 동네 빵집입니다.

 

11시에 가게 문을 여는데 10시 반부터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비좁은 가게는 손님들로 미어터집니다. 오후 한 시가 되면 그날 만들어 놓은 빵이 동이 납니다.

 

“수십 년 동안 바게트 빵을 만들어왔는데 그 맛이 매일 달라요. 그날 그날 날씨가 달라서 온도와 습도의 차이에 의해 빵이 영향을 받거든요. 효모와 물 그리고 밀가루를 프랑스에서 가져와서 만드는데 매일 맛이 다르게 나옵니다.

 

밥을 지을 때도 매일 똑같은 밥이 나오지 않잖아요? 어떤 날은 되고 어떤 날은 질고… 빵도 똑같아요. 제가 정말 오랫동안 빵을 만들어 왔지만 빵 만드는 일은 항상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바게트보다 만들기 어려운 게 식빵이라는 사실을요.”

 

언제나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는 그 가게의 사장이 필자에게 해준 말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모든 재료를 프랑스에서 가져와서 만드는 이 빵집의 빵 값이 프렌차이즈 빵집보다 싸다는 것입니다.

 

조금 비싸도 맛이 보장된다면 지갑을 여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소비패턴입니다.

그런데 이 빵집은 빵 값까지 경쟁력이 있으니 흔히 하는 말로 ‘게임이 끝난’것입니다.

 

공룡처럼 비대해진 프렌차이즈 빵집의 과다한 마케팅 비용 덕택으로 소비자는 감동적인 광고를 접할 수는 있어도 정작 감동적인 빵 맛은 못 느끼게 된 지 오래 됐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대량생산 일괄 배송을 하던 공장빵의 유통과정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음식은 사람이 만드는 것인데 시스템이 만들게 해놨기 때문입니다.

 

미국에는 스타벅스가 절대로 이기지 못하는 동네 커피집들이 꽤 많이 존재합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블루 버틀(Blue Bottle)이라는 커피 집은 언제나 커피 매니아들로 넘쳐납니다.

스탠포드 대학 근처의 보로네(Borrone)카페 역시 맛 좋은 커피를 제공합니다.

 

캔사스 시티 중심가의 브로드웨이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맞은편의 스타벅스를 찾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 이유는 동네 커피 집이 훨씬 맛있기 때문입니다.

 

스타벅스처럼 거대 기업은 제공할 수 없는 전문가의 세심한 손길에 의해 커피가 로스팅되고 추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가끔 들르는 스타벅스 매장에도 아르바이트 학생만 있었지 바리스타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가끔 찾았던 동네 프렌차이즈 빵집에서도 이제 갓 연수를 마친 듯한 어린 제빵사가 무표정한 모습으로 빵을 구웠던 기억이 납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자신들만의 표준화된 레시피가 있기 때문에 단지 커피를 뽑고 빵을 굽는 데 고급 인력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필자가 찾는 ‘오월의 종’이라는 동네 빵집에도 어린 제빵사들이 여럿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표정이 무척 밝다는 것입니다.

 

빵을 만드는 것이 너무나 좋고 훌륭한 선배 밑에서 제대로 빵을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그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습니다.

지난해 동네 빵집이 400여 개나 늘었다고 합니다.

 

어머님이 갓 지어주신 밥은 김치만 얹어 먹어도 맛있습니다.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인스턴트 밥맛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제대로 갓 구운 바게트는 맨 빵만 먹어도 정말 맛있습니다. 동네 빵집이 늘어나는 이유입니다.

 

파리크라상은 며칠 후 빵 값을 평균 7.3% 인상한다고 합니다. 올해는 또 얼마나 많은 동네 빵집이 공룡 같은 프렌차이즈 빵집에 맞서며 일어설지 기대됩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편집국 (c1221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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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파랑은 넓은 하늘과 바다, 평화의 색, 그리움의 색..파랑으로 품는 청마의 해 (2014-01-17 05: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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