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소치 동계 올림픽이 끝났습니다.
즐거움이라고는 별로 없는 나라에서 우리 선수들의 메달 획득 소식과 처녀 출전한 컬링, 봅슬레이 같은 종목의 선전이 불면의 밤을 보내는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김연아, 이상화, 심석희, 박승희 등 국민과 함께한 모든 선수들을 열거하기는 어렵죠. 피겨 불모지에서 나온 거의 ‘전무후무할 퀸’이 소치를 끝으로 선수를 마감하기에 ‘연아가 있어서 행복했습니다’라는 말은 심금을 울렸습니다. 애국심이 이심전심돼 애환을 함께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대한민국이 내쳐서 러시아에 귀화한 안현수(빅토르 안)가 푸틴 대통령의 관심 속에 3관왕으로 나는 장면을 보며 우리 빙상 스포츠 정책을 그냥 놔두면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이제 우리는 4년 뒤에 오륜기 대신 사륜기를 보여준 소치의 미흡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불안해집니다.
이제 전설이 될 김연아 선수는 “우리보다 더 간절한 사람에게 메달이 갔다고 생각하자”라며 대범하게 삭이고 판정의 비판을 남에게 맡겼지만 페어플레이 선수들을 짓뭉개는 더러운 오심은 막아야 합니다.
2002년 미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1,500미터 결승에서 안톤 오노의 헐리웃 액션으로 실격패해 금메달을 잃은 ‘김동성’은 없어야 하고 판정의 익명성을 악용한 음모에 희생되었을지 모를 김연아의 프리스케이팅 같은 개최국의 입김이 의심되는 판정은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죠.
야후스포츠의 기자는 착빙에 실수한 소트니코바가 김연아나 코스트너를 제치고 금메달을 따야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회전을 한 번 더한 것이 실수 안 하고 고난도 점프를 잘 소화한 것보다 더 평가받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런 비판은 미국은 물론 영국, 프랑스, 캐나다, 스위스 등에서 골고루 나옵니다. 미 NBC스포츠닷컴은 ‘소치에서 어느 여자 피겨스케이터가 금메달을 땄어야 했는가’라는 설문조사까지 실시하고 있습니다.
출국 전 기자들이 텃세에 대해 묻자 연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지만 개최국의 텃세가 경기의 일부는 아닙니다.
소치 피겨 프리 대회는 안 좋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연아 출전 직전 선수의 점수 발표가 늦어진 것은 혹시 밴쿠버 금메달리스트를 더 긴장시켜 자국 선수에게 유리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이 들었죠. 초도 쪼개서 움직일 피겨 선수가 경기하려고 링크에 나섰는데 당연히 시작되어야할 경기가 얼마라도 지연되어 하릴 없이 링크를 공회전하는 것은 심리적 부담을 줄 게 분명합니다,
앞서 쇼트의 성적 발표가 나오는 순간 연아의 입 모양이 "아, 짜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였죠. 네티즌들은 그때 “연아의 적은 라이벌이 아니라 심판”이라고 꿰뚫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리 땐 친러 관중들마저 적대적이 아니었는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아이스링크에서 연아보다 몇 번째 앞에 나섰던 이탈리아 코스트너 선수의 곡으로 라벨의 ‘볼레로’ 가 흘러나오자 관중들은 손과 발로 세차게 장단을 맞춰 주었습니다.
“이런 소란함은 뭐야?” 피겨는 스포츠와 예술의 결합인데 이런 시골스런 행태도 괜찮은 건지 지나치다고 생각하면서도 연아의 출전 때도 이럴 것인지 헤아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디오스 노니노’라는 애절한 곡 때문인지, 아니면 나만 냉랭하게 느껴진 것인지 이전 선수들에 보인 뜨거움이 급랭하는 분위기로 표변했습니다.
어떤 프랑스 언론인은 올림픽이 시작될 무렵 쓴 기사에서 “소치에서 그를 응원할 사람은 동포와 그가 훈련받은 캐나다뿐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결점 경기가 끝났어도 무덤덤하고 냉랭한 반응이었습니다.
러시아 관중들은 혹시 “쟤가 금메달 따면 어쩌나” 했을까요? 피겨는 동계올림픽의 꽃이죠. 타이틀 보유자를 이렇게 대접해서야 개최국의 예의가 아니죠. 동네 잔치가 아니니까요.
4명이라는 친러 심판을 포함해 판정한 9명의 기밀이 아무리 보호된다고 해도 편파성은 개최국에 해가 되고 스포츠 발전을 저해합니다.
러시아가 소련에 속했던 소비에트 블록 시절, 체제경쟁에서 뒤쳐져 멸망을 향해가던 공산주의 국가들은 자랑할 게 없자 올림픽 메달에 목매달았습니다.
특히 국력에 걸맞지 않는 동독의 이상스런 최상위권 메달획득이 그랬죠.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면서 1990년 3월 동독(DDR) 주민들의 자유총선거로 구성된 동독 국회는 서독(RDA)과의 합병을 결의해 동독은 흡수 통합되었습니다.
안현수를 귀화시켜 3관왕에 오르게 한 것처럼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이 잘 됐다고 흡족해 할지도 모르지만 무차별하게 획득한 메달 수가 정치적 성공에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내가 준비해온 것을 최선을 다해 펼쳤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라는 김연아의 생각을 개최국도 가져야 합니다,
나처럼 많은 밤을 새워 응원하거나, 자고 일어나니 "메달을 땄네"라고 기뻐하는 사람들이나 메달은 애국심으로 국민을 묶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방송’이라는 KBS가 실시간 중계 시청에 로그인을 요구했습니다.
국민에게 무슨 회원과 로그인이 필요하죠? SBS는 그냥 보여주었습니다.
메달에 집착하여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 과잉 충동이 일어나기 쉽죠. 김연아가 놓친 금메달처럼 뒷얘기가 무성해지고 그 스캔들의 수식어로 ‘소치’, 혹은 ‘솔트레이크시티’라는 개최지의 수치스런 접두사가 세계의 매스컴에 붙어 다닐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낸 세금도 보태져서 치루는 올림픽이 그런 스캔들을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나라건 남의 나라건 실력껏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승패를 갈라 쿠베르탱 남작이 만든 올림픽의 이상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기 개최국인 우리나라가 ‘소치의 밤’에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꺼림칙한 금메달보다 올림픽 정신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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