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늦은 밤, 119안전센터에 민원인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어눌한 말투에 목소리도 작아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전화였다. 화재 보험 가입에 대한 문의였는데, OO보험사의 안내로 가입을 했더니 수십 만 원의 보험비가 나왔다며 손님도 없어 개점휴업 상태인 식당에 큰 부담이라는 내용이었다. 소방서에서 보험료 많이 나온 것을 처리해 줄 수는 없다. 사인간의 계약인 민간의 영역을 침범하는 건 공무원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이다. 그러나 민원인의 처지가 너무 딱해보여서 주간 근무자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인계하였다. 시간이 흘러 그 건을 잊고 말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에게서 민원을 넘겨받은 김OO 반장은 보험사 및 보험설계사 등 여러 곳에 전화하고 민원인의 식당을 직접 찾아가 면담하는 등 며칠 동안 그 민원을 처리하는 데 골몰하였다. 식당 주인은 초로의 남자로 언어 구사가 불편한 상태였고, 부인되는 분은 외국인이었다. 다문화 가정의 특성상 일반적인 사회생활(이 경우에는 보험계약)에서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불이익을 받은 경우였다. 통상의 다중이용업소 화재보험은 특약의 차이가 있으나 저렴하게 할 경우 5,000원~ 30,000원 정도면 가입이 가능하다. 헌데 해당 식당은 일만 원으로 가입이 가능한 보험을 60만 원으로 가입했다. 보험설계사의 말만 믿고 무리하게 특약을 많이 넣어 발생한 결과였다.
우리의 친절한 김OO 반장님은 며칠 동안 야간 근무 후 쉬는 날에도 동분서주하며 위 사실을 밝혀내고 기존의 보험을 해지하도록 도운 후, 직접 식당 주인을 모시고 OO은행으로 가서 저렴하게 보험 가입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댓가로 김OO 반장은 삶에 지친 얼굴에서 안도의 한숨을 보았고 사람에 치인 노부부의 웃음을 찾아줄 수 있었다.
“인간에게 있어 자유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인간에게 자유란 본질적 가치이자 반드시 지켜야 할 실천적 가치이다. 자유를 생략하면 인간 존재는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 근대 유럽에서 개인의 자유는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소극적 자유에서 국민대중의 복지증진을 위하여 국가권력의 간섭을 요구하는 적극적 자유로 발전하였다. 소극적 자유란 ‘~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적극적 자유란 ’~를 향한 자유‘를 의미하는데,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면서 행복권이 추구되는 상황을 뜻한다.”
(정경환, 『사회현실의 인식』中)
요즘 공무원 사회는 ‘청렴’이 화두이다. 몇 년 전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모든 업무와 일상에 청렴을 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정도다. 청렴 관련 각종 교육과 서류와 평가들이 난무한다. 그러나 쏟아지는 청렴의 홍수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부패지수는 높아만 가고 국민들의 인식 또한 별다르지 않다. 혹 우리가 배우고 실천하는 청렴의 정의가 보다 넓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김 반장의 사례에서 보듯 굳이 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할 수도 있는 역할까지 청렴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바꿔야 하는 건 아닐까? 위의 인용문에서 자유를 청렴으로 바꾸면 우리가 가야할 청렴의 길이 보인다.
“공무원에게 있어 청렴은 존재의 본질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청렴은 공무원의 본질적 가치이자 반드시 지켜야 할 실천적 가치이다. 청렴을 생략하면 공무원이란 존재는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 공무원의 청렴은 ‘비리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소극적 청렴에서 국민대중의 복지증진을 위하여 ‘국가권력의 개입을 실행’하는 적극적 청렴으로 발전하여야 한다. 적극적 청렴이란 ’~를 향한 청렴‘을 의미하는데,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면서 국민의 행복권이 추구되는 상황을 뜻한다.”
흐르는 물살에서 제 자리만 지키고자 하면 조금씩 떠내려 갈 수밖에 없다. ‘나는 법령을 준수하며 비리에 초연하여 독야청청(獨也靑靑)하다’ 며 자위할 수도 있겠으나 세태와 세월에 따라 뒤쳐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적극적 청렴의 자세로 의식을 변화하여 보다 공무원의 본질에 합당한, 국민의 행복에 가까워지는 신뢰받는 119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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