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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5년12월30일 07시42분 ]

작년 이맘때 이 칼럼을 통해 새해를 맞이하는 나의 소감을 쓴 글의 제목은 빚 줄이는 해였습니다. 가계, 기업, 국가 등 경제주체 모두 빚을 줄이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정직하게 말한다면 빚을 줄이지는 못해도 현상유지라도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작년 말까지 1,090조원 대였던 가계 빚이 9월 말 기준 1,166조가 되었고, 연말엔 1,200조원대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15% 가까이 늘어나는 겁니다. 이 빚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서민들이 가늠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가구당 6,000만원, 1인당 2,000만원이 넘는 수준입니다. 국민 각자 자기 처지에서 감당할 만한 금액인지를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공부채도 연말이면 1,000조원 대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것도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보증 채무를 포함하면 1,700조원이라고도 합니다. 산출 기준에 따라 1,300~2,500조 원으로 규모에 차이가 큰 기업부채도 늘고 있지만 기업의 규모, 업종에 따라 편차가 큽니다. 대기업은 수백조의 유보금을 쌓아놓고 있다니 빚질 일은 없을 겁니다. 이 두 종류의 빚도 가계부채만큼 급격하지는 않지만 매년 늘어온 것입니다.

  공공부채와 기업부채가 얼마나 위험한 수준인가에 대해서도 처한 입장에 따라 의견이 다릅니다. 정부 쪽에서는 OECD 국가의 평균치 등을 들이대며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합니다. IMF 사태 때보다 더 위험하다는 정반대의 주장도 있지만 정부 주장을 믿어주는 것이 정신건강을 위해선 나을지 모릅니다.

  빚을 갚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돈을 벌어서 갚거나 돈을 못 벌면 허리띠를 졸라매서 갚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경제가 위기라면 경제 주체들 모두 돈도 안 벌리는데 허리띠를 졸라맬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경제성장률도 올해는 2%대 성장에 그칠 전망입니다. 잘 가는 듯하던 수출도 올 들어 줄곧 내리막이었고, 마침내 2011년 이후 지속됐던 교역규모 1조달러 국가의 지위에서도 탈락할 전망입니다. 경제성장이 안 돼 세원(稅源)은 줄어드는데 정부는 씀씀이를 줄일 생각은 않고, 정치권의 포퓰리즘까지 가세해 재정의 오·남용이 심각합니다.

  기업 쪽의 허리띠 졸라매기는 구조조정인데 그 대상이 돼야 할 노조의 저항이 거셉니다. 기업의 경영난은 기술 품질 투명경영을 게을리하고, 해고를 쉽게 생각하는 경영자들의 안이한 자세의 탓도 큰데 그 역시 개선되는 기미가 안 보입니다.

  가계는 어떻습니까. 비정규직이 근로자의 절반에 가까운 나라여서 기본적으로 가계가 기를 펴기 어렵게 돼 있습니다. 소득수준보다 소비수준이 높은 데다, 과시소비 성향도 높은 사회입니다. 저축을 해봐야 이자가 미미하고, 가장 안전한 투자처는 부동산이라는 인식도 강합니다.

  정부는 이같은 여건을 십분 이용해 경기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저금리 정책을 펴서 가계를 상대로 빚을 내 부동산에 투자하라고 권유했습니다. 그것이 가계부채를 늘린 가장 큰 원인입니다.

  그러나 금리가 항상 낮을 수는 없는 겁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자 한국은행도 금리를 올릴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금리인상에 대비한다며 가계대출 조건을 강화해 왔던 터라 금리가 올라가면 빚더미 가계가 가장 먼저 타격을 받게 되는 구조입니다.

  가계와 기업의 부채 증가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국가신용등급은 역대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지난 19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3에서 Aa2로 한 단계 올린 것입니다.

  이는 한국이 이제껏 국제신용평가사로부터 받은 신용등급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이고, 주요 20개국(G20) 중에서도 미국, 독일,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영국, 홍콩 다음으로 프랑스와 같은 등급입니다. 일본 중국도 우리보다 아래입니다.

  국가신용등급 평가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지표는 국가의 부채규모와 상환능력입니다. 무디스는 한국은 2010년 이후 통합재정수지가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도 40% 수준으로 유지할 것을 예상했다고 밝혔습니다.

  가계나 기업의 부채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증가율도 낮은 정부 부채를 주요 판단 근거로 한 셈입니다. 한국의 높은 신용등급은 정부가 져야 할 빚이 가계와 기업에 이전된 결과로 국가신용등급의 역설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무디스 평가의 핵심적인 요소는 3,700억 달러로 사상 최대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외환보유액입니다. 수출은 줄었어도 수입이 더 준 불황형 무역흑자가 지속되면서 외환보유액이 쌓여가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무역적자로 기업의 부채가 늘고 외환이 고갈되어갔던 IMF사태 때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한국의 무역규모도 줄었지만 세계무역규모는 훨씬 더 줄어 한국의 수출물량 증가율이 세계평균보다 배 이상 높은 5.6%였습니다. 그 결과 세계수출시장 점유율도 작년의 3.0%에서 올 상반기엔 3.29%까지 오히려 올랐습니다. 신용등급의 역설은 무역수지의 역설도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무디스의 평가에 마냥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199711IMF 사태 때도 국제신용평가사들은 그랬기 때문입니다. 무디스 외에 피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등 3대 신용평가회사들은 당시까지 한국이 부여받은 등급 중 최상위 등급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다 한국정부가 구제금융을 요청하자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세 번이나 조정해 투기등급으로 떨어뜨렸습니다.

  IMF사태는 대한민국이 구조조정을 당한 사건입니다. 그때 대한민국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장롱의 금반지까지 내다 팔아 달러를 모아서 400억달러 규모의 IMF 빚을 갚았던 겁니다. 그때는 기업과 은행의 부채관리 실패로 당했는데 지금은 경제 주체 모두의 부채가 대한민국을 옥죄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올해의 가계부채 증가추세를 보고 나서 나는 더 이상 내년을 향해 빚 줄이는 해라는 식의 허망한 소망을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빚은 속성상 어차피 부도 날 때까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불길한 생각도 듭니다.

  IMF사태를 통해 한국은 진 빚을 갚고 다시 일어서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끔찍한 경험을 다시 해야만 지금의 빚을 청산할 수 있다면 우리는 역사와 후대에 크나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필자소개 : 임종건 필자는 1970년 중앙대 신문학과를 나왔으며 한국일보사와 자매지 서울경제의 여러 부서에서 기자와 데스크를 거쳤고, 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을 지냈습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 위원 및 감사를 지냈고, 일요신문 일요칼럼의 필자입니다. 필명인 드라이 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편집국 (c1221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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