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이 4월 13일에 실시되니 이제 80일 가까이 남았습니다. 총선에 출마하려는 공무원은 선거 90일 전 사직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이미 1월 14일 사표를 낸 사람들이 많습니다. 3월 24일부터 25일까지 후보자 등록, 3월 30일부터 4월 4일까지 재외투표소 투표에 이어 3월 31일 선거운동이 시작됩니다. 지금은 의정활동 보고가 금지된 시기입니다.
그런데 선거일정은 이렇게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지만, 정작 선거구는 아직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우리나라는 국회의원 정수, 지역구와 비례구 의석 간의 비율이 고정돼 있지 않고 법률로 정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 수가 늘 달라져왔습니다. 선거구 획정위원회도 법정 기한을 넘겨 급조되기 일쑤인 데다 위원회의 결정이 국회에 대해 구속력이 없어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구 획정문제가 늘 논란이 돼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해도 너무한 상황입니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져 정치권 안팎에서 불복론과 총선 연기론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10월 30일 인구편차를 3 대 1로 규정한 현행 선거구가 위헌이라며 2015년 12월 31일까지 2 대 1이 되게 개정하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중앙선관위 산하에 헌정 사상 처음으로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여야 간 합의 실패로 공전만 거듭하다가 위원장이 사퇴한 상황입니다. 여야 지도부가 지금까지 10여 차례 협상을 벌이고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서로 계산이 달라 선거구의 최소공배수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참 우습고 타기할 일입니다. 솔직히 말해 누가 국회의원이 되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사실 별 관심도 없습니다. 지금과 같은 행태라면 20대라고 해서 국회 꼴이 달라지리라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승부를 겨뤄야 할 정식 싸움판은 정하지도 못하고 싸움판 때문에 싸움질 말질만 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 아닙니까? 자기네 일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19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놀고 싸우고 한 꼬라지를 살펴보면 선거구 획정 하나도 마무리하지 못하는 게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일찍이 2대 국회 때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 국회를 가리켜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국회”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6·25전쟁의 와중에 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국회가 정부가 하는 일에 자꾸 제동을 걸자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한 말입니다. 지금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국회’의 한심한 행태를 살펴볼까요? 법안 가결률의 경우 16대 62.9%, 17대 50.4%, 18대 44.4%로 낮아지더니 이번 19대 국회에서는 31.6%로 더 떨어졌습니다. 여야 대치로 인해 151일간 법안을 1건도 처리하지 않은 일도 있습니다. 말이나 하지 말 것이지, 세비 삭감이니 특권 완화를 한다고 떠들어 놓고 약속은 전혀 지키지 않았습니다.
부정과 비리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박탈당하거나 수사를 받게 돼 자진 사퇴한 의원이 22명이나 됩니다. 역대 국회 중 가장 많습니다. 틈만 나면 각종 수당과 세비를 올리려 하고, 보좌관 월급을 싹둑 잘라 상납 받고, 자식들의 취직을 위해 갑질을 하고 압력을 넣고, 각종 특혜를 누리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파렴치한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선거철이 다가오자 유인물 홍보물을 뿌리고 후원금 내달라고 편지를 보내니 낯도 두껍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하기야 낯이 두꺼우니 그 잘난 정치를 하겠지요. 정치인들이야 원래 물도 없는 곳에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공약을 하는 사람들이라지요? 서경에 망수행주(罔水行舟)라는 말이 있더군요. 물이 없는 곳에서도 배를 띄우려는 듯이 놀이에 탐닉한다는 말인데, 의원님들은 지들끼리 즐겨 놀고 상대방과 싸우느라 날이 저물고 밤이 새고 있습니다.
19대 의원들은 한 명도 뽑아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 따위로 입법부 활동을 한다면 누군들 못 하겠습니까? 걸핏하면 잘도 내세우는 노련한 경륜이나 의정활동 경험은 대체로 이권에 개입하고 탈 없이 돈 받아먹는 기술로나 이용될 뿐입니다. 선배나 다선의원들이 후배 의원들에게 도둑질 갑질이나 전수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어떻게 그런 자들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명분으로 의원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그런 자들에게 선량이라는 말을 하게 된 건지 알 수 없습니다. 19대 의원을 한 사람도 다시 뽑아주지 말자는 말이 억지인 건 잘 압니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리 없고, 개중에는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아도 될 인물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오죽 화가 나면 이런 ‘낙선캠페인’을 할까요? 참회하고 반성하고 거듭나기 바랍니다. 이미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긴 하지만.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필자소개 :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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