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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6년02월01일 07시51분 ]

국회라는 제도가 이 세상에서 아예 없어져 버린 정치 상황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요즘처럼 국회의원이라는 엉뚱한 상전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처지에서는 매우 절실한 질문입니다. 일본의 사상가이자 문화비평가인 아즈마 히로키(東浩紀)는 이에 대해 주목할 만한 답변을 내놓고 있습니다. 인터넷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앞으로 언젠가는 국회가 저절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얘기지요. 국내에서도 번역된 일반의지2.0’의 내용입니다.

 

그의 주장은 단순합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쏟아지는 정보만으로도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집중적인 데이터베이스 작업으로 국회의 민의수렴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탁견이지요. 소통도 훨씬 원활해질 것입니다. 민주주의 이론의 근거를 제시했던 프랑스 사상가 장자크 루소의 일반의지를 뛰어넘는 개념입니다. 존 로크나 몽테스키외 같은 계몽 사상가들도 미처 내다보지 못한 새로운 민주주의 형태가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즈마가 전망하듯이 국회가 없어도 되는 세상이 과연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지만 설사 현실이 된다고 해도 그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지금 상황이 너무 답답한 게 문제입니다. 오는 4월로 예정된 20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당들이 벌이고 있는 온갖 추태를 바라보면서 가위눌린 듯 진저리를 치게 됩니다. 할 일은 안하면서 임기가 아직도 남았다며 금배지를 달고 으스대는 의원들의 너저분한 꼬락서니가 마음에 들 리 없습니다.

 

굳이 국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까지 따져볼 필요도 없습니다.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입법부가 행정부 및 사법부와의 관계에서 국가권력 행사를 놓고 견제와 균형을 유지토록 한다는 것이 고전적인 삼권분립 이론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들의 자유와 행복을 최대한 보장해 주겠다는 취지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전체 구성원들이 속한 국가와 사회의 건전한 발전도 보장할 수 있다는 기대까지 깔려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요.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위해 존재하기보다는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느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신당의 깃발 아래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이뤄지고 있으며, 기존 정당 내부에서도 권력투쟁이 치열합니다. 민주주의 발전과 유권자들을 위하는 노력인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초유의 위헌 상태까지 초래한 선거구 획정 문제조차 마냥 미뤄두면서 그렇게 말한다면 뻔뻔스러울 뿐입니다.

 

자기들의 기본 역할인 입법권을 내팽개친 지는 이미 오래입니다. 갖가지 명분과 이유가 내세워지고 있지만 세계적 도전에 직면한 국가 현실과 경기 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들의 처지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여야가 기껏 합의에 이르렀다가 막판에 깨지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그러고도 그들에게 꼬박꼬박 장관급에 해당하는 세비를 지급해야 하는 걸까요. 국회가 없어도 되는 세상을 꿈꾸게 되는 이유입니다.

 

도대체 현역 의원들의 뇌 구조가 궁금합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300명으로 출범했으면서도 불미스런 이권문제로 명패가 바뀐 인원이 스무 명이 넘을 정도입니다.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의원 가운데서도 일부는 잡음과 관련해 공천권을 박탈당했다고 하지만 한 꺼풀 들춰보면 나머지 사람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원래부터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면 금배지를 달게 되면서 의식구조가 바뀌게 되는 걸까요.

 

지금 우리의 정치 상황은 행정권과 사법권으로도 국회를 통제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살리기 범국민 서명운동에 동참해야 했을까요. 대통령이 나서서 입법촉구 운동에 서명한 것이 바람직했느냐의 여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만, 국회를 둔 이유가 행정권과 사법권 남용을 방지하려는 데 있다는 삼권분립의 이론이 무색해진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결과적으로 국회의원들에 대한 좌절감만 쌓여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을 국민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난날 혹독했던 군부독재 시대를 넘어 민주주의를 이뤘다고 하는 상황에서 부딪친 기묘한 패러독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회를 '민의의 전당'이라고 부르는 것도 쑥스러운 일입니다. 온갖 욕설을 듣고도 태연하다면 귀를 닫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국회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확대되는 가운데 선거를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기껏 선거를 해봤자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또 당선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정치 신인이라고 참신성을 기대하고 뽑았어도 기존 정치권의 등쌀을 견디지 못하고 똑같이 흐물흐물 주저앉는 모습을 반복해서 목격해 왔습니다. 사회적 물의를 빚은 장본인들이 몇 표를 더 받았다고 계속 정치무대에 올라서는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됩니다.

 

국회를 국민의 뜻대로 움직이려면 선거제도부터 뜯어고쳐야 합니다. 무엇보다 선거구에 따라 당선자를 내지 않아도 되게끔 새로운 방안 마련이 필요합니다. 자격에 못 미치는 사람들이 우르르 출마했는데도 어차피 그중 한 명이 당선되도록 돼있는 것은 모순입니다. 대의제라는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유권자들이 속을 부글부글 끓이고 있다는 사실을 후보자들이 똑똑히 깨닫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제는 선거거부 움직임을 넘어 아예 국회를 폐쇄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될지 모릅니다. 앞서 소개했듯이 아즈마가 인터넷과 모바일의 발달로 제풀에 꺾여 국회 기능이 도태될 것이라고 내다본 것과는 또 다릅니다. 이럴 바에는 당장이라도 국회에 빗장을 질러야 한다는 아우성이 들려오는 것 같지 않습니까. 마지막 선택은 국회의원들의 몫입니다. 더 늦기 전에 현명하게 처신해 주도록 국민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필자소개 :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편집국 (c1221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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