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유영주 씨에게 유독 바쁜 한 해였다.
경기도교육청에서 진행하는 학교평화통일교육 프로그램에서 유영주씨가 강사로 나섰다.
그녀는 자신만의 강의안을 개발해 새터민 강사를 양성하고, 새터민에 대한 인식개선을 교육하는 제연교육연구소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통일보다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강의를 합니다. 강의수준은 교육대상자의 나이에 맞춰서 풀어나가죠. 저는 질문을 던지고 답은 청강자가 찾도록 유도해요.” 라며“강의를 하거나 상담을 하면서 배우는 것이 정말 많아요. 스스로 성장하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어요. 강의를 하기 전에는 ‘한국 사람들이 통일에 관심이 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젠 달라요. 통일은 기약이 없지만 북한 사람들에 대해선 관심이 많다는 걸 느껴요. 그럴 때면, 역시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사실에 가슴 속에서 뜨거움이 밀려오죠.”
유영주 씨는 세계 최초 새터민 라이프코치(KAC)다. 라이프코치 전문자격은 국제코칭연맹이 관장하고 국내에서는 (사)한국코치협회에서 자격증을 발급한다.
유씨는 개인이나 조직의 잠재력을 끌어내 성과를 극대화 하도록 돕는 것이 코치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유씨가 처음 새터민 인식개선 강의를 시작한 것은 2010년. 당시 남동구청에서 새터민을 강사로 육성하는 프로그램 교육을 받았다.
유 씨는 한 달 동안 교육을 받은 후 약 3개월 동안 강의를 이어갔다. 단발적으로 끝난 사업이었지만 유 씨에겐 뜻 깊은 시간이었다.
이듬해 그녀는 청년 사회적 기업가 육성 프로젝트를 통해 ‘북한출신 인재들을 다방면의 전문가로 키워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제연교육연구소’를 설립했다.
9년전인 2007년 1월, 탈북을 결심하고 중국을 통해 대한민국에 첫 발을 디뎠을 때는 뱃속에 아기가 있었고 작은 가방 하나 뿐이었다.
북한에 있을 때 까지만 해도, 그녀는 ‘엘리트’로 불렸다. 의사인 어머니, 공학박사인 아버지 밑에서 언니와 동생까지 모두 대학교에 진학한 집안에서 유영주 씨는 전자공학을 전공한 수재였다.
그런 그녀가 탈북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공부와 일을 마음껏 하고 싶어서”였다. 20대 초반의 나이로 시도한 첫 번째 탈북은 북송으로 끝이 났다.
북한과 중국 국경을 넘었을 때는 살기 위한 도망이었다고 강의하는 유영주 씨는 코칭기술을 적용한 새터민 인식개선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그녀는 직업을 얻기 위해 컴퓨터 학교도 다녔다. 한국에 온 뒤엔 좀 나아지리라 생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고 지원금으로 대학 공부를 계속해야 했다.
그녀는 강의를 하고, 새터민 전문가를 육성했다. “인천은 새터민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지만, 제대로 인재를 활용하지 못해 안타까워요. 제 목표는 남, 북한 사람들이 이어지고 맺어져서 공동작품을 만들어 내는데 힘쓰는 거예요. 스스로 틀을 깨고 나와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인천에서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라며 힘주어 말했다.
“ 제가 오늘의 위치에 오게 된 것은 주변에 좋은 힘들이 저를 끌어주고, 밀어주고, 지탱해준 덕분이에요.” 라며 어설피 웃는 그녀에게서 강한 의지가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