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무능은 입법 활동의 태만과 졸속에 관한 것입니다. 19대 국회는 특히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역대 최악의 무능 국회로 기록될 전망입니다. 법안 처리를 무작정 미루어 폐기시키거나, 처리된 법안은 제대로의 토론도 없이 졸속 처리돼 개정 요구가 잇따릅니다.
그중 후자를 대표하는 법이 작년 3월 국회를 통과해 오는 9월부터 시행예정인 김영란법입니다.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을 받은 공직자를 형사 처벌하는 것이 이 법의 골자입니다.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이 법을 만들었을 때와, 2013년 국무회의에서 의결됐을 때의 명칭은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안’이었으나 국회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명칭이 바뀌면서 ‘공직자’와 ‘이해충돌방지’가 사라졌습니다. 공직자의 부패와 비리를 막는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법에 공직자가 없어진 것이 이 법의 난맥의 핵심입니다. 제목에서는 사라진 ‘공직자’는 법조문에 ‘공직자 등’으로 표시됐습니다.
문제의 ‘등’이 들어가게 된 것은 공직자가 아닌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이 이 법의 적용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국회는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의 업무가 공직자와 맞먹는 공공성을 지닌다는 이유를 댔습니다. 어느 언론인이 자조하듯 언론이 ‘제4부(府)’임을 대한민국 국회에 의해 공인받은 셈입니다.
말이야 맞습니다. 언론과 교직의 공공적 성격은 공직자보다 작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언론인을 공무원 취급해서야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전체주의 독재체제에서나 있는 일이죠.
또 공공성으로 말한다면 의료업, 금융업, 방산 업체 등 정부발주 사업을 시행하는 각종 기업체, 정부지원을 받고 있는 시민단체들의 비중이 언론이나 교직보다 적지 않을 것입니다.
공직자와 민간인을 구분하는 가장 원초적인 기준은 월급이 국고에서 나가느냐일 것입니다. 교직원의 경우 공·사립을 막론하고 월급에 국고 지원이 들어 있으므로 사립교사의 공직자 여부는 따져볼 여지가 있을 것이나, 민간기업에 종사하는 언론인의 경우 그렇게 간주될 여지는 없습니다.
월급을 기준으로 하면 언론분야에선 KBS와 EBS 임직원, 공립학교 교직원이 공직자 범위에 드는 것은 분명합니다. 공영방송 기자와 공립학교 교사만 대상이 된다면 같은 직역 있는 민간 언론인 및 사립학교 교사와의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것이 김영란법에서 언론인과 사립교원을 공직자와 동등하게 취급한 이유였을 것입니다. 거기에 언론과 교권의 독립성에 관한 고려는 없었습니다. KBS EBS가 공공기관이라도 실질과 기능에서는 엄연히 언론기관입니다.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일반 형법으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는 언론과 교사 부분은 공·사를 막론하고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입니다. 굳이 적용해야 한다면 KBS EBS 임직원과 공립학교 교직원으로 국한하면 됩니다.
법 시행 결과 그들에게서 부정과 비리가 여타 공직자들과 마찬가지라면 적용대상을 전체 언론, 전체 사립교로 확산해야 할 이유가 될 것입니다. 관(官)의 일부분이 적용 대상이라고 해서 이를 민간 전체로 확대 적용하는 것은 전형적인 관존민비이자 행정편의적 발상입니다. 또 부분으로 전체를 규율한 주객전도입니다.
특히 언론은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게 존재이유입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와 언론이라는 대립적 기능 주체를 한통속으로 몰아넣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물귀신 법’입니다.
이 법이 국회에서 무리하게 처리된 배경을 짐작케 하는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 작년 1월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던 이완구 의원이 기자들과 점심을 같이하며 했다는 막말 수준의 말들입니다.
“김영란법 때문에 기자들이 초비상이거든, 안 되겠어 통과시켜야지… 내가 막고 있는 거 알고 있잖아, 욕먹어 가면서… 여러분도 친척들 때문에 검경에 붙잡혀 가서 당해 봐… 지금까지 내가 공개적으로 막아 줬는데 이제 안 막아 줘.”
그는 이 말 외에도 언론사 간부에게 압력을 넣어 기사를 뺐다거나, 언론인들에게 직장을 알선해 줬다는 등의 발언을 저급한 표현으로 쏟아냈습니다. 그의 그런 언론관에 대해 국무총리 자질론이 제기된 것은 당연했습니다.
김영란법에 대한 그의 발언도 총리지명 후 자신에 관한 언론의 비우호적인 보도에 불만을 토로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법은 그의 총리 취임 직후인 3월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관피아 척결’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비등하던 사회적 분위기에도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집권당의 원내대표로서 그가 보다 사려 깊게 김영란법에 대처했더라면 오늘의 난맥은 피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 그는 김영란법을 언론에 대한 생색과 엄포 겸용으로 써먹었을 뿐입니다.
그의 발언은 어쩌면 대한민국 공직사회 전반의 언론관을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언론, 너희는 깨끗하냐?’는 반감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국민의 언론에 대한 불신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므로 언론도 깊이 반성해야 할 대목입니다.
이 법은 언론 및 교원 관련단체로부터 평등성 및 과잉금지 위반 등 위헌요소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돼 헌재에서 심의가 진행 중입니다. 헌재는 9월 시행 전에 결정을 내릴 예정이나, 국회가 그전에 자발적으로 법개정을 하는 것이 바른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는 공직부패를 막기 위한 김영란법을 무력화하기 위해 무리하게 민간을 끌어들였다는 세간의 의혹을 벗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필자소개 : 임종건
필자는 1970년 중앙대 신문학과를 나왔으며 한국일보사와 자매지 서울경제의 여러 부서에서 기자와 데스크를 거쳤고, 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을 지냈습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 위원 및 감사를 지냈고, 일요신문 일요칼럼의 필자입니다. 필명인 드라이 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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