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아프리카 소녀가 머리 위에 큼직한 원통형 플라스틱 물동이를 이고 걸어갑니다. 소녀는 양손을 높이 뻗어 물동이를 꽉 움켜쥐고 몸의 안정을 잡기 위해 꼿꼿이 걸어갑니다. 꽤 힘들어 보입니다.
콘서트 소개 리플릿에 인쇄된 사진 이미지입니다. 이 리플릿에는 ‘The Gift'(선물)라는 제목과 ’공연 수익금은 전액 월드비전의 탄자니아 식수사업에 사용됩니다’란 문구가 붙었습니다.
지인의 권유로 며칠 전 서울 강남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소울챔버오케스트라’의 관객이 되었습니다. 3층짜리 공연 홀이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두 시간의 콘서트, 그러나 음악을 연주하고 듣기만 하는 정규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아니었습니다. 곡 연주 사이사이 사회자가 콘서트 취지를 설명하고 출연자를 소개하는가 하면, 때로는 지휘자와 즉석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아프리카, 식수 오염, 나눔, 재능 기부, 우물을 얘기했습니다.
‘소울챔버오케스트라’는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주기 위해 매년 한 차례 공연을 합니다. 이날 콘서트는 여섯 번째였습니다. 60여 명으로 구성된 관현악단, 40여 명의 합창단, 협연자 등 100명이 넘는 연주자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출연료를 받지 않고 재능 기부를 위해 모였습니다. 한 번의 연주회를 위해 100명이 연습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모두 소속된 직장이 있기에 마련하기 어려운 시간을 할애하고 모두 보수를 받지 않고 연습부터 공연까지 참여합니다.
공연 책자를 넘기다 보니 소울챔버오케스트라가 한 일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작년 다섯 번째 콘서트까지 모인 돈이 2억5,700만 원이고 이 돈으로 스와질랜드 우간다 에티오피아 니제르 등 4개국 마을에 식수 펌프 14개와 식수대(수도) 1개를 설치했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냥 저절로 되는 일은 없습니다. 누군가 처음에 뜻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야 일이 진행됩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소울챔버오케스트라를 이끄는 ‘큰손’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첼리스트 김인경 씨입니다.
기사를 읽어보니 김 감독은 대단한 자선사업의 꿈을 갖고 오케스트라를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연히 읽은 한비야의 여행수필집 ‘그건 사랑이었네’가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먹을 물을 길어오기 위해 종일 걸어야 한다는 글을 읽고 ‘월드비전’ 홈페이지에 “첼리스트로 재능기부로 돕고 싶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고 합니다.
음악을 전공한 월드비전 직원이 이 글을 보고 기획을 도와줬고 김 씨는 8명의 현악 연주자를 끌어모아 2009년 첫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몇 명의 연주자들이 악기를 들고 아프리카 현지 여행을 다녀오면서 김 씨는 더욱 소울챔버오케스트라의 활동에 정열을 쏟게 되었고, 많은 음악인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날 연주회 분위기에 빠져 잠시 아프리카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아프리카는 인류의 발상지입니다. 이곳서 태어난 인류의 일부가 지중해를 넘어 유럽으로 가서 백인이 되었고, 또 다른 일부가 아시아 대륙으로 이동하여 황인종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프리카는 검은 대륙이라 불립니다. 이런 이름은 인종의 피부 색깔만 놓고 붙여진 이름이라기보다는 아프리카의 인종, 문화, 정치, 역사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이미지가 서구사회에 투영된 결과입니다.
우리는 지금 경제의 양극화를 말합니다. 그러나 아프리카를 힘들게 하는 것은 절대빈곤입니다. 절대빈곤 사회에선 최소한의 생존 기본조건을 충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기아와 질병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이들입니다. 아프리카의 또 큰 문제가 물 부족입니다. 농사를 지을 물뿐 아니라 깨끗한 식수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뿌옇고 지저분한 물, 흙탕물, 오염된 물만 보고 자라서 물이 깨끗하고 투명하다는 것조차 모르는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날 콘서트 관람권 판매 수입으로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어느 마을엔 곧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식수대(수도)가 들어설 것입니다. 한국에서 보면 하찮을 것 같은 수도꼭지 하나가 아프리카에선 수십 명의 목숨을 수인성 전염병으로부터 구할 수 있습니다.
아마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이런 소식에 감동을 받고 소울챔버오케스트라에 참여하는가 봅니다.
'소울'(Soul)이라는 오케스트라의 이름은 아프리카 아이들과 연주자가 비록 다른 곳에 살지만 음악을 통해 모두의 영혼을 적시는 소리를 내고 싶어서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연주회가 끝나고 나왔을 때 봄밤이 무척 부드러웠습니다. 음악을 통해 아프리카 어린이들과 마음을 교류하며 이들을 돕겠다는 단원들의 표정이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필자소개 :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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