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자문해 보십시오.”
1961년 1월 미국 35대 대통령에 당선된 케네디(John F. Kennedy)의 취임사 모두입니다. ‘강력한 미국’ 건설을 위해 국민의 협력과 합의가 절실함을 강조하고 촉구한 명연설로 꼽힙니다.
같은 해 5월 군사정변에 성공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불과 2년 뒤에 이 나라 젊은이 수천~수만 명을 해외 험지로 내보냈습니다. ‘가난한 한국’ 구제를 위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그들의 급여를 담보로 차관을 얻기 위한 고육책으로. 서독 광부·간호사 파견과 브라질 농업이민이었습니다.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가 없던 젊은이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조국을 떠났습니다.
초근목피로 끼니를 때우고, 디스토마를 걱정할 겨를도 없이 물고기를 잡아 날로 먹고, 흙까지 파먹어도 피할 길이 없었던 보릿고개. 농촌의 아들들은 잠자리와 밥 세끼 조건만으로 도회의 철공소로, 딸들은 식모나 차장으로 고향을 등져야 했습니다. 몇 안 되는 대졸자들은 공장이 없어 일자리 구하기가 낙타 바늘구멍 지나가기보다 어려운 상황에도 속수무책이던 시절이었습니다.
1963년 초 서독 광부 모집 인원 500 명에 4만6,000여 명이 몰려들었습니다. 100대1 가까운 경쟁률입니다. 그해 12월 21일 123명을 시작으로 77년까지 ‘눈물의 외화벌이’를 떠난 파독 광부가 7,932명, 간호사는 1만226명(국가기록원 자료)에 이르렀습니다. 광부들은 수백 미터 지하 갱도에서 석탄가루를 들이마셨고, 간호사들은 치매 환자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땀과 눈물로 향수를 적셨습니다.
이보다 앞선 63년 2월 1차 103명을 필두로 65년 5차까지 1,896명이 브라질로 농업이민을 갔습니다. 이들도 상당수가 대졸자였으나 현지 땅은 지권(地權) 분할도 안 된 불모지였고 임시 합숙시설조차 마련되지 않은데다 현지인들의 눈길마저 싸늘했습니다. 농사지을 꿈이 깨진 이민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 등 도시로 흘러들어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들은 왜 조국을 떠나야 했을까요?
얼마 전 한 종편TV 프로그램 <차이나 도올>에서 김용옥 씨가 젊은 제자 패널들을 질타하는 장면이 이채로웠습니다. 그는 특유의 양철 두드리는 목소리로 “너희들은 조국을 ‘헬 조선’이라고 불평할 자격이 없어. 정치인들은 표가 많은 노인층에 더 관심을 두고 있으니, 청년들의 살 길은 청년들이 만들어야 해”라는 투였습니다.
그런데도 왜 청년들은 서울을 벗어나지 않으려 할까요?
대학을 졸업하고도 열에 예닐곱은 취업을 못하고, 직장인 절반이 비정규직인데다, 40대 미혼자의 절반 이상이 캥거루족인 청년들. 국민은 뒷전인 채 서로 물고 뜯기에 여념이 없는 정치인. 국회에 발목 잡혀 옴치고 뛰질 못하는 정부.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국이 청년들의 미래를 열어 줄 거라는 기대 때문일까요.
파독 광부·간호사나 브라질 농업이민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월남에서 피 흘리고, 중동에서 땀 흘린 은퇴 세대들은 젊은이들의 행태에 의혹을 품거나 불만을 터뜨리는 이가 많습니다. 왜 서울의 대기업만 쳐다보느냐, 왜 지방의 중소기업을 회피하느냐, 그러면서 왜 대학은 지방에서 다녔느냐, 외국인 근로자들이 하는 일을 왜 너희들은 외면만 하느냐고.
젊은이들은 항변합니다. 기본 스펙을 마련하기 위해선 서울의 일류 대학에 못 들어가면 차선책으로 지방대를 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합니다. 대기업의 절반도 안 되는 지방 중소기업 임금으로는 생계도 빠듯한데 어떻게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집을 마련할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외국인 근로자 50만 명이 하는 일을 왜 이 나라 청년들은 안하느냐는 질문엔 “그런 일을 어떻게…”입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신일본제철에서 스카웃 돼 포항제철을 건설한 고 김철우 박사는 “한국의 석사 출신 신입사원이 일본 학사 출신 수준인데도 입사하면 현장 근무를 꺼리고 사무실에서만 일하려 한다”며 “면접시험 때 ‘서울 근무 시켜 주는 거죠’ 하고 먼저 물을 땐 어안이 벙벙했다”고 걱정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 이야기입니다. 거대한 공기업이 그러니 다른 중소기업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누구를 탓할까요?
소통은 안하고 비생산적 국회만 탓하다 밥그릇마저 깨버린 대통령, 20대 국회 지역구 당선자 40%가 수사선상에 오른 정치판, 고용인에 사람대접은커녕 군림하는 재벌, 세습고용에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적자난 회사에 상여금을 요구하는 강성 노조. 그들을 비난하고 공박하면 젊은이들의 속이 편해지고 살 길이 트일까요.
그보다 더 암울한 미래가 인류를 엄습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단순반복 작업을 로봇이 대신한 지는 오래고, 무인 전철이 고속으로 달리거나 드론이 택배를 하는 현실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현재 직업 중 없어질 직업이 수두룩합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전망은 47%에 이를 것이라니 청년들이 선호하는 직업 중 10~20년 후에는 존재 자체가 불투명합니다.
대책은 없을까요?
그걸 알면 왜 백수이겠습니까. 기업은 사람 쓰기를 몸서리내고, 국회는 일자리 창출 법안을 수백 일, 수삼 년 깔아뭉개고, 정치꾼은 물고기 잡는 법 대신 물고기를 주겠다고 유혹하고, 여야는 서로 네 탓이라고 삿대질만 해대니….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모른다’고 한 괴테의 말이 해결책일까요.
세간에 떠도는 말들이 더 알아듣기 쉬운 것 같습니다.
=똥이 방안에 있으면 오물이고, 밭에 있으면 거름이다.
-모래가 거실에 있으면 쓰레기이고, 공사장에 있으면 좋은 건축 재료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분수에 맞는 자리에서 직분을 다하면 풍년의 거름이 되고, 수백 년을 견디는 건축 재료가 됩니다. 그것은 청년들이 스스로 선택해야 할 권리이자 책무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필자소개 :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