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 구조조정의 물살을 타고 대학가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대학 입학정원에 비해 계속 줄어들고 있는 고등학교 졸업생 수를 고려하면, 대학의 구조조정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다가와 있지만, 학문의 전당인 대학의 전공과 학과를 취업률을 중심으로 평가해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데는 문제가 많습니다. 교육 정책은 정부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가 아니라 국가의 백년지대계로 추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15년 우리나라의 고등교육기관의 수는 433개로, 그중 4년제 대학, 교육대학 그리고 전문대학을 합친 수는 346개나 됩니다(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 참조;http://kess.kedi.re.kr). 그리고 그 많은 대학들이 교육현장의 여건과는 무관하게 수도권 대학들을 중심으로 학벌에 초점이 맞추어져 획일적으로 서열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 현장의 변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채, 대학의 수와 정원을 마구 늘려온 것은 교육부(예전의 문교부)의 작품입니다. 이런 혼류(混流)의 중심에 있는 교육부가 이제 와서 '기업과 사회가 원하는 분야의 인재를 더 많이 배출하도록 요구하는 구조조정'이란 명목을 내세우며, 학과의 통폐합, 정원의 감축, 그리고 대학의 수를 줄여나가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학이나 학과의 존폐를 정하는 구조조정은 학생과 학부모, 교수 그리고 교직원들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과제이기 때문에 그의 추진에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 숫자의 변화는 매우 놀랍습니다. 1970년에 71개였던 일반대학의 수가 1990년에는 107개로 늘어났고, 그 수는 계속 늘어 2010년에는 179개, 2015년에는 198개로 1970년에 대비해 무려 127개교가 늘어났습니다. 재학생 수는 1970년에 14만 6천여 명에서 2015년에는 2백 11만 3천여 명으로 14배가 넘게 증가했습니다. 전문대학도 1970년에 65개에서 80년에는 128개로 2배 가까이 늘었고, 2000년에는 158개였다가 현재는 138개로 일부 줄었지만, 그 수는 1970년의 두 배가 넘습니다.
2015년 고교 졸업생 수는 62만여 명으로 대학의 입학 정원에 근접해 대학들의 학생 충원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이 되면 고교 졸업생 수가 56만 명 수준으로 떨어져 대학 입학생 수를 밑돌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지방대학이나 소규모 대학의 미달 사태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래서 교육부가 대학의 구조조정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척박한 땅에 뿌려지면 제대로 성장하여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대학들이 놓여있는 토양이 점점 척박해지고 있으며, 구조조정의 영향으로 지방 대학들이 자리하고 있는 토양의 황폐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많은 수험생들이 수도권 대학과 수도권 명문대학(?)의 지방 분교 쪽으로 몰리고 있어, 지방의 작은 대학들은 물론 거점대학들조차도 제대로 설 땅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OECD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수도권에 대학들이 밀집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는 우리 학부모들의 특유한 교육열과 정부의 일관성 없는 교육정책이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는 결과물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예전같이 좋은 직장과 질 높은 삶을 보증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학부모들의 인식은 학벌 위주의 학력주의(學歷主義)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많은 수험생들이 수도권의 명문대학 진학에 전력투구하고 있습니다.
대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현재 추진되고 있는 대학의 구조조정에는 함께 고려해야 할 사안들이 많습니다. 우선 학벌이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유일한 척도가 아니라는 인식이 범사회적으로 확산되어야 합니다. 지금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활동하는 10년 후에도 과연 대학의 간판이 예전처럼 중요할까요.
대학교육의 내실화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대학교육의 부실화로 대기업들이 대졸 신입사원보다 경력 사원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대학이 단순한 지식을 쌓아 취업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학문을 탐구하는 장이라는 사실도 제대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취업률을 기준으로 인문계열 학과나 예술 관련 학과 등을 일방적으로 축소하거나 없애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대학의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초중고와 대학을 연계하는 교육정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초중등학교가 적성과 소질에 따라 일반대학에 갈 것인지, 기술 분야로 진입할 것인지를 가늠하는 교육현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직업기술 전문대학제도를 도입해 그 전문대학을 졸업한 기술인들이 사회에서 충분히 우대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 풍토 조성을 다른 방안의 하나로 제안해 봅니다.
대학은 스스로 교육중심이나 연구중심으로 특성화와 전문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교육부는 이러한 대학별 특성화의 실현을 위해 대학의 구조조정을 양적 자료만 가지고 물리적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 안목으로 일관성 있는 특성화 정책을 수립해 추진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학 스스로가 구조조정을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함께 특성화에 필요한 재정 지원 방안도 마련해야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필자소개 :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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