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일 전, 충남 아산의 순천향대에 가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1시간 동안 떠든 일이 있습니다. 달리 아는 게 없어서 ‘즐거운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두서없이 이야기하고 왔습니다. 이 대학교 향설나눔대학의 교양교육센터는 매주 사회명사들을 초청해 ‘피닉스 열린 강좌’를 열고 있는데, 1주일 전에는 영화배우 정준호가 재미있게 강의를 하고 갔다 해서 더 부담스러웠습니다.
향설나눔대학은 신경내과 의사였던 설립자 서석조(徐錫助·1921~1999) 박사의 아호 鄕雪(향설)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고향 눈이라는 뜻이지요. 대학 관계자들과 점심을 먹을 때 그 말을 듣고 나는 ‘고향설’이라는 대중가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한잔 하면 잘 부르는 노래 중 하나입니다. 가사가 아주 시적인데, 3절까지 있습니다.
“한 송이 눈을 봐도 고향 눈이요/두 송이 눈을 봐도 고향 눈일세/끝없이 쏟아지는 모란눈 속에/고향을 불러보니 고향을 불러보니 가슴 아프다//소매에 떨어지는 눈도 고향 눈/뺨 위에 흩어지는 눈도 고향 눈/타향은 낯설어도 눈은 낯익어/고향을 떠나온 지 고향을 이별한 지 몇몇 해던가//이놈을 붙잡아도 고향 냄새요/저놈을 붙잡아도 고향 냄샐세/날리고 녹아가는 모란눈 속에/고향을 적셔보는 고향을 적셔보는 젊은 가슴아.”
약간 다른 가사도 있습니다. “한 송이 눈을 봐도 고향 눈이요/두 송이 눈을 봐도 고향 눈일세/깊은 밤 날아오는 눈송이 속에/고향을 불러보는 고향을 불러보는 젊은 푸념아//소매에 떨어지는 눈도 고향 눈/뺨 위에 흩어지는 눈도 고향 눈/타관은 낯설어도 눈은 낯익어/고향을 외여보는 고향을 외여보는 젊은 한숨아.” 3절은 같습니다.
1942년에 이봉룡(이난영의 오빠) 작곡 백년설 노래로 발표된 ‘고향설’은 나라 잃은 민중의 상실감과 애수를 달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가사가 다른 것은 작사자인 시인 조명암(趙鳴巖·1913~19993)의 월북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이가실 김다인 금운탄 조영출(북에 가서는 조령출)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신라의 달밤’ ‘꿈꾸는 백마강’ ‘선창’ ‘낙화유수’ ‘알뜰한 당신’ ‘목포는 항구다’ ‘진주라 천리 길’ 등 수많은 가요의 가사를 썼고, 일제의 강요에 의해 친일·전쟁미화 가요도 많이 썼습니다. 월북과 친일, 두 겹의 굴레가 씌워진 그의 노래는 금지곡이 되거나 가사와 작사자가 바뀌었다가 1988년 월북예술인 해금을 계기로 정확한 작사자가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 노래 이야기를 한 뒤 대학에 도착했을 때, 나는 방명록에 ‘順天者 興(순천자 흥, 하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흥한다)’이라고 썼습니다. ‘맹자’와 ‘명심보감’에는 맹자의 말로 “順天者存 逆天者亡(순천자존 역천자망)”, 하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살아남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패망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늘의 뜻을 받들어 펼치는 고향’이라는 순천향은 설립자 향설을 위해 김종필 전 총리가 지어준 이름이랍니다. 향설의 어록 중 가장 유명한 게 “질병은 하늘이 고치는 것이고 의사는 그 과정을 도울 뿐이다”입니다.
사실 나는 순천향대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순천향대가 순천에 있는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학교 상징물을 피닉스로 정해 홍보를 많이 하고 있는데, 인간사랑과 봉사를 강조하다 보니 기독교 계통의 대학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고향과 눈을 바탕으로 뭔가 만들어 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향설에 대해 “고향 마을에 내리던 푸근하고 정감 어린 백설처럼 숱한 교훈과 추억을 남기고 떠났다”고 추모하는 글을 쓴 사람도 있더군요.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물도 고향 물이 더 달고, 달도 고향 달이 더 밝고, 눈도 고향 눈이 더 정겹습니다.
‘충무공 얼이 깃든 아산 옛 터전에 웅지의 나래를 편 진리의 상아탑’(교가 일부 변형)에서는 봄이면 개교기념일(4.2) 무렵부터 30년 넘는 800여 그루의 벚나무가 일제히 꽃을 피워 장관을 이룬다고 합니다. 오라고 하지 않아도 지역주민은 물론 멀리에서까지 벚꽃을 보러 옵니다. 눈을 다른 이름으로 육화(六花)라고 하는데, 봄이면 앵화(櫻花), 겨울이면 육화가 캠퍼스를 장식합니다. 물론 벚나무에도 눈꽃이 핍니다.
고향이 경북 의성인 설립자가 왜 그런 아호를 갖게 됐는지, 왜 아산에 학교를 세웠는지 모르지만, 이런 풍치를 생각하면서 ‘고향설’이라는 노래로도 뭘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 대학마다 홍보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명사초청 특강도 홍보의 일환일 텐데 그렇게 홍보가 절실하다면 축제행사든 백일장이든 가요제든 아니면 다른 상징물이든 뭔가 개발해 낼 게 있을 것 같은데 아직 그런 건 없나 봅니다. 더욱이 ‘고향설’ 작사자 조명암의 고향이 아산입니다.
하지만 그가 북으로 넘어가 고위직을 역임한 ‘빨갱이’라는 시비와 논란이 걱정된다면 노래를 부른 백년설(白年雪·1914~1980)을 중심으로 기획을 할 수도 있겠지요. 본명이 이창민인 그의 예명에도 눈이 들어 있지 않습니까? 일세를 풍미한 대중가요는 작사자나 가수, 어느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에게는 ‘즐거운 글쓰기’를 이야기했지만, 대학 관계자들이 좀 더 ‘즐거운 상상’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필자소개 :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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