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의 안산(鞍山) 남쪽 기슭 북아현동은 한때 서울에서도 보기 드물게 아늑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주택가였다고 합니다. 꼭 고급주택들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가파른 계단 위에는 허름한 서민주택도 적지 않아 더욱 인정이 풍기는 마을이었답니다. 적잖은 시비 끝에 지금은 한쪽에선 주택들이 헐리고 다른 쪽에선 고층 아파트들이 올라가느라 북새통입니다.
그다지 넓지 않은 이 마을에 초등학교서부터 남녀 중고등학교에 대학교까지 뻬곡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지하철 아현역에서 북아현동 삼거리에 이르는 길지 않은 길엔 그래서 늘 젊고 싱싱한 기운이 감도는 듯합니다. 등하교 시간엔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환한 얼굴, 밝은 목소리로 활기가 넘칩니다.
한 가지 불편이라면 왕복 2차선의 불안한 도로 사정입니다. 인도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차도 사람도 지나다니기에 여간 조심스럽지 않습니다. 좁은 길에 잠시 짐을 싣고 내리느라 차 한 대라도 정차해 있으며 금세 밀려드는 차들로 긴 줄이 이어집니다. 그렇게 좁은 길을 정규적으로 운행하는 마을버스 기사들에겐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할 갓 같습니다.
오전 10시 전후, 중고등 학생들이 이미 교실에 들어갔을 때쯤엔 주로 대학생들이 마을버스를 이용합니다. 지하철역 바로 위 ‘능안로입구’라고 표시된 마을버스 정류장엔 늘 도착한 차례대로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의식 있는 대학생들이라 더욱 질서정연한 듯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버스가 도착하는 순간 이 줄은 마치 고무줄 끊기듯 흐트러지고 맙니다. 앞쪽 몇 사람은 줄을 따라 앞문으로 오르지만 중간 이후에 섰던 사람들은 태연하게 뒷문으로 올라탑니다. 처음 그런 일을 겪을 때는 은근히 불쾌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려면 무엇 때문에 줄을 만들어 섰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차 안이 크게 붐비는 것도 아닙니다. 뒤쪽으로는 늘 빈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여러 번 같은 상황에 부딪히며 차차 그 사정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문은 좁아서 차에 오르는 데 시간이 많이 지체됩니다. 그에 비해 뒷문은 넓어서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재빠르게 차에 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리다툼이 아니라 비좁고 복잡한 길에서 탑승 시간을 줄이려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버스 기사도 굳이 뒷문 승차를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시간 절약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니까요. 다만 버스의 뒷문 한복판에 붙여놓은 ‘뒷문 승차 금지’라는 빨간 글씨가 참 우습게 보입니다.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를 이용할 때 앞문 승차, 뒷문 하차는 하나의 사회적 약속입니다. 누군가의 자유를 구속하려는 게 아니라 모두의 편리를 위해서 그렇게 정해 둔 것입니다. 질서가 곧 효율이요 편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장 눈앞의 작은 편리를 좇아 융통성을 앞세우다 보니 그 약속이 한순간에 깨어지게 된 것입니다.
원칙을 지킬 것이냐, 융통성을 발휘할 것이냐. 어느 쪽이 언제든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습니다. 그러나 정말 어쩔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원칙은 지키는 게 옳습니다. 작은 원칙 하나를 가볍게 여기고 깨다 보면 점차 큰 원칙도 쉽게 범하게 될 것입니다. 작은 약속 하나를 제대로 지키지 않다 보면 더 큰 약속도 우습게 여기고 쉽게 어길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무질서와 혼란이 바로 그렇게 잉태된 것일 겁니다.
자라는 청소년, 젊은이들이 그런 위험을 깨달아 조금 지체되더라도 끝까지 차례를 지키고 질서를 지킨다면 얼마나 대견해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북아현동에는 예전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가 세 살에 숨진 의소세손(懿昭世孫)의 무덤 의령원(懿寧園)이 있었습니다. 의령원은 애기능으로도 불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에 아직도 ‘능(陵)안로(路’)‘라는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의소세손은 정조의 친형이 됩니다. 영조는 사도세자와 세자빈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첫 손자를 얻자 곧바로 세손으로 봉해 큰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세손은 어려서 죽고 사도세자 역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자 영조는 결국 두 번째 손자 정조에게 왕위를 넘겨주게 됩니다.
의령원은 지금 고양시 원당의 서삼릉(西三陵) 경내로 옮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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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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