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산행이 끝날 무렵이면 절로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됩니다.
‘저 길고 험한 길을 용케도 잘 걸어왔구나,’ 꽤 장한 기분이 듭니다. 늘 다니는 길이건만 숨이 차고 힘에 부치는 날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산이 뿜어내는 맑은 정기를 가슴 깊이 들이키며 땀 흘려 산행을 마친 하루는 늘 뿌듯하고 즐겁습니다.
한 해가 저무는 이맘때면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게 됩니다.
기쁘고 즐거웠던 일도 있지만 슬프고 괴로웠던 일, 때로 억울한 일도 없지 않습니다.
가파른 언덕을 숨이 차서 오르고 골짜기 맑은 샘에서 목을 축여 가쁜 숨을 돌리듯 우리네 인생도 굽이굽이 산행길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차피 걸어가야 할 길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걸어야 할 일입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千祥炳, 1930~1993) 시인의 ‘귀천(歸天)’을 듣노라면 술값으로 문우(文友)들에게서 얻은 돈을 허공에 내두르며 기뻐했었다는 시인의 기담(奇談)이 떠오릅니다. 간첩 혐의를 받아 모진 고문에 시달리고 정신병원에도 드나들며 가난과 술을 벗 삼아 험한 생을 살았지만 시인은 귀천하기 전 이 세상살이를 아름다운 소풍이라 노래했습니다.
지난 9월 UN이 발표한 ‘2013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전체 156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서 41번째를 기록했습니다.
가장 행복한 나라는 덴마크, 그 아래로 노르웨이, 스위스, 네덜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상위를 휩쓸었습니다.
이 순위는 갤럽 세계 여론조사와 유엔 인권지수 자료 등을 토대로 산출한 국가별 행복지수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은 17위, 유럽의 중심 세력인 영국은 22위, 프랑스 25위, 독일 26위, 스페인 38위, 이탈리아 45위로 나타났습니다.
오일 머니로 복지를 실현하는 중동을 제외하면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30위, 태국 36위, 대만 42위, 일본 43위 순입니다.
발표된 순위를 보면 국가의 행복지수가 꼭 국력이나 국부(國富)와 비례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경제력이 부강해졌다고 말합니다. 단군 이래 이렇게 잘 먹고 잘살아 본 적도 없다고들 합니다.
그렇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그렇게 높지 않은 듯합니다.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린 탓입니다.
나의 오늘에 감사하는 마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쓴나물 데온 물이 고기도곤 맛이 있어~” 하고 배를 내밀면 세상 부러울 것도, 남과 싸울 일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하루 세끼 이밥에 고깃국을 먹어도 스테이크 자르는 옆집만 쳐다보면 공연히 울화가 치밀기 마련입니다.
오늘도 우리 사회는 동서 갈등과 좌우 대립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도처에서 지역 이기주의, 노사분규로 인한 충돌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이하게도 돈 없고 빽 없는 서민들보다 먹고 살만한 집단들 간의 투쟁이 더 격렬합니다. 연봉이 1억 원에 이른다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분규와 파업으로 중소기업의 경영, 서민들의 살림살이만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어디서 분쟁만 벌어졌다 하면 해결사를 자처하고 득달 같이 달려가 싸움을 부채질하는 투쟁 전문가들도 있다고 합니다.
더욱 딱한 건 사회 갈등을 조정하고 봉합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거친 언사와 비천한 막말로 편싸움에 가담, 갈등을 조장하고 분쟁을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외세에 온몸으로 맞서 싸운 선열들의 영향인지 우리 사회에는 투쟁의 지도자들이 넘쳐납니다. 독립투사만큼이나 민주 투사도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조정하고 균열을 봉합하고 화해의 길로 이끌어주는 화합과 평화의 지도자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나면 또 다른 새해가 시작된다는 건 참 다행한 일입니다.
지나간 기쁜 일 슬픈 일들을 앨범 속 사진처럼 기억 속에 갈무리해 두고, 새해엔 모든 일들을 다시 한 번 실수 없이 잘해 보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새해는 이 땅 위의 평화를 위해 모두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서의 가르침처럼.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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