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빌딩, 28=청춘, 24=센터, 42=좋아, 82=아파, 88=올림픽, 94=일생, 53=불고기, 52=팩.... 최근 카카오톡으로 받은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제목은 ‘맹구의 구구단’. 맹구라면 능히 이런 계산을 할 만하겠지요.
내가 몇 개 덧붙이자면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49=팔구, 99=비둘기, 38=따라지, 44=오입, 33=오오, 48=뜨기.
SNS를 이용한 통신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이런 ‘웃고 삽시다’ 류의 글이 하루에도 여러 건 들어오고 있습니다.
메일, 문자 메시지, 카카오톡, 페이스북에다 요즘은 새로 가입한 밴드까지 있으니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삶의 지침이 되는 좋은 이야기와, 늘 웃고 살게 해주겠다는 재미있는 글이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옵니다.
일일이 답을 하는 것도 아니고 더러 재미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도 하지만 어쨌든 성가신 일입니다.
이런 글을 읽다 보면 왜 웃으며 살아야 하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웃으면 복이 오고, 웃음은 삶의 윤활유이고, 웃음은 보약이고,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며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지만 허구한 날 웃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세상이니 시비 걸지 말라구요? 정말로 웃자고 한 일인데 왜 목숨 걸고 대드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군요.
내가 이렇게 ‘시비’를 거는 이유는 실없고 헤픈 웃음이 보기 흉하고, 일과 삶의 진정성과 진지함을 해치는 얼버무림이 싫고, 때와 장소를 가릴 줄 모르는 미숙함과 무분별이 거슬리고, 실상은 아무 표정도 담지 않은 기계적 조작적 웃음에 대응하기 난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을 자꾸 하다 보니 보기 싫은 웃음이 더 자주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특히 TV방송의 기상캐스터나 아나운서들, 젊고 이쁜 그녀들은 왜 그렇게 만날 웃는지 모르겠습니다. 웃는 얼굴이 보기 좋은 건 분명합니다.
찌푸리고 화가 난 듯한 얼굴보다는 밝고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는 게 당연히 기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웃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웃는 것은 “저는 사실 이 문제 잘 몰라요.” “이 일을 하고는 있지만 전 실력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자들이 별로 없고, 있다 해도 남자들과 동등하게 경쟁하는 직장에 오래 다녀서인지 여자들의 웃음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여성이 많은 직장에서 걸핏하면 웃는 여성들을 상대하는 건 되게 피곤한 일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내 친구는 어떤 식품의 대리점장으로 일할 때 전원 여성인 직원들을 상대하느라 머리가 다 빠지는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점장님 비위 맞추는 웃음, 점장님의 눈에 들려고 하는 상호 질투와 고자질, 이런 것들이 장난이 아니더라는 겁니다.
초년기자 시절에 나도 부장 앞에서 웃으면서 이야기하다가 혼이 난 경험이 있습니다.
편집부에서 근무 중일 때 내가 만든 지면이 스스로 생각해도 불만족스럽고 멋쩍어서 그랬던 것인데, 부장은 헤프고 얼버무리는 웃음을 전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섭섭했지만 그분 덕에 나는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헤프게 웃는 것의 문제점을 요즘 더 생각하게 해준 사람은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입니다.
윤씨는 지난해 4월 인사청문회 때 “수산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십니까?”라는 질문에 웃음을 터뜨리면서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윤진숙 표 웃음’의 시작이었는데, 아마도 멋쩍고 어색해서 웃었던 것 같습니다.
윤씨는 분위기가 좋지 않은 걸 깨닫고는 이내 “전혀 모르는 건 아니고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전격 해임된 뒤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침울하지 않은 씩씩한 목소리로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해서 또 웃음을 샀더군요.
방송에 나와 “왜 자꾸 구설수에 오른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제 이름을 올려야 언론사가 잘 되나 싶다. 인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면 대책이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윤씨를 발탁한 박근혜 대통령은 “모래밭에서 찾은 진주”라고 했으니 어이가 없는 일이지요.
이미 그만둔 사람을 이렇게 자꾸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입니다.
웃어야 할 땐 당연히 웃어야겠지요.
그러나 고위 공직자라면 국민이 진심으로 웃게 하고 마음 편하게 해주어야지 “개그맨을 능가한다”는 평을 받는 언동으로 웃음거리가 돼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한국인들은 넋과 혼이 빠진 것처럼 만날 웃고 살 일이 아니라 더 진지하고 심각해져야 합니다.
특히 대중 앞에 나서는 공인들에게는 헤프고 헐한 웃음이 아니라 진지하면서도 온화한 표정을 요구하고 기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오석 부총리처럼 무심하고 무관심한 얼굴이 좋다는 건 결코 아닙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한국일보 논설고문, 자유칼럼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