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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도 안개 속에서 항로를 벗어나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모를 일
등록날짜 [ 2014년04월20일 07시40분 ]

어이없는 사고였습니다.

475명의 승객을 태운 6,800톤급 대형 여객선이 전라남도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고 만 것입니다.

 

인천 여객터미널을 떠나 제주도로 향하던 도중이었습니다.

해군 특수부대와 해경대원들이 긴급 투입되어 구조작업을 펴고 있건만 절반도 구조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280여명의 생사가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숨진 채 발견되는 인원이 자꾸 늘어가고 있습니다.

 

낮에는 물론 밤중에도 조명탄을 밝힌 채 구조작업이 펼쳐지고 있으나 악천후 때문에 거의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조류가 거칠어 여객선의 선체 내부까지 들어가기가 어려운 모양입니다.

이러한 해난사고의 경우 승객들의 생존 가능 시간이 대략 두세 시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니, 구조작업이 지연될수록 생존자는 자꾸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승객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며, 국민들도 시름에 잠겼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경기도의 어느 고등학교 학생들이 제주도 수학여행을 가다가 한꺼번에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전체 325명의 학생들 가운데 기껏 70여명만 구조됐다니 참담하기만 합니다.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첫 보도에 안도의 한숨을 돌렸던 것도 잠시였습니다.

 

배가 가라앉으면서 이들이 가족들에게 보냈다는 휴대폰의 마지막 문자 메시지가 가슴을 울립니다.

3박4일 일정의 수학여행길이 인생의 마지막 여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승객 가운데는 환갑을 맞아 모처럼 단체 유람에 나선 어느 초등학교 동창생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집기가 나뒹굴고 접시가 쏟아져 깨지는 아비규환의 와중에서도 서로 어깨를 부둥켜안고 격려하며 숨져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때문에 눈물을 흘릴 아내와 남편, 그리고 자식들을 걱정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주도로 이사하는 부모를 따라 승선했다가 혼자만 구출된 여섯 살짜리 여자 아이의 얘기도 애처롭기만 합니다.

 

이번 사고는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사가 풀리고 구멍이 뚫린 단면입니다.

 

우리 사회도 이미 안개 속에서 항로를 크게 벗어나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어느 구석에선가 뚫린 구멍으로 물이 새들어오고 있는데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여객선에 승객이 과연 몇 명이나 타고 있는지조차 헷갈리는 지경은 아닐까요.

 

멀리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290여명의 희생자를 초래한 서해훼리호 사건을 들먹일 필요도 없습니다.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를 벌이던 도중 리조트 체육관이 무너지는 바람에 애꿎은 사망자를 낸 것이 불과 두 달 전의 얘깁니다.

 

지난해에는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여한 고교생들이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구명조끼가 모자라고 구명보트도 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 채 여객선에 탑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최근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도 근본 원인은 비슷합니다.

복지시설이라고 간판을 붙인 보호기관에서 폭행과 성추행 사고가 일어나고 있으며, 집안에서조차 아동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태어난 지 두 돌이 갓 지난 어린아이가 칭얼댄다는 이유로 아버지에 의해 코를 틀어막혀 숨지는 사고도 일어났습니다.

 

우리 사회가 암초에 부딪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하나의 경고등입니다.

 

당국의 거듭된 재발방지 대책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 내부적으로 자금을 빼돌리는 사고가 빈발한 데다 고객정보가 수시로 누출되는 사태는 또 어떻습니까.

 

대학에서조차 교수 임용을 둘러싸고 금품거래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으며, 공기업은 적자 투성이면서도 기득권에 대해서는 기를 쓰고 양보하지 않으려 듭니다.

 

그러다가 물이 스며들어오면 결국 함께 가라앉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탓입니다.

 

개점휴업 상태에서 꼬박꼬박 세비만 챙겨가는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들은 경제난으로 한숨에 울상을 짓고 있는데도 지방선거에 공천을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허송세월하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상태입니다.

 

배가 좌초된 상태에서 승객들은 아랑곳없이 먼저 탈출하려는 선장을 포함한 일부 선원들의 본능적인 생존의식이 그러할까요.

국민들은 열통이 터지다가 이제는 거의 체념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위에서 지시를 내리고 다그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지시를 내리는 앞에서는 받아 적는 척하다가도 돌아서서는 금방 딴소리하기 일쑤입니다.

 

권력층에서 위장전입과 낙하산 인사로 자리 나눠먹기에 뇌물수수 사건이 심심치 않게 적발되는 상황에서 조직에 영이 서지 않는 것입니다.

 

반지하 셋방에서는 생활고에 못 이긴 일가족이 동반 자살로 목숨을 끊는 가운데서도 공무원들은 연금을 지키겠다고 필사적으로 매달릴 뿐입니다.

 

이것이 정녕 제대로 굴러가는 나라의 모습인지요.

이렇게 흐트러진 사회 분위기를 하루 빨리 바로잡아야 합니다.

 

사고가 터져서는 구조요청을 해도 이미 때늦은 상황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의 안전은 뒤로 미뤄둔 채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다가 끝내 주검으로 발견된 어느 여자 승무원의 얘기에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입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어떤 단계에 처해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다른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바닥에 가라앉아 뱃머리만 드러낸 여객선의 모습을 다시 비쳐주고 있습니다.

 

그 화면에 겹쳐 승객들이 난간에 매달려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부르짖는 모습도 떠오릅니다.

지금도 여객선 내부의 어느 빈 공간에서는 생존자들이 서로 격려하며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구조작업에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이번 사고로 숨져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필자소개

 

 

                                  허영섭

 

 

언론인, 칼럼니스트. 저서로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한국과 대만, 잠시 멀어진 이웃’(e-book) 등이 있다.

 

편집국 (c1221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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