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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6년01월01일 11시38분 ]


 

병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막 떠나보낸 을미년을 돌아보니 한 해 동안 잘도 많은 글을 써왔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게 됩니다. 내용이나 수준은 둘째 치고 그렇게 쓸 수 있는 건강과 기회가 주어진 것이 우선 고맙습니다. 글을 쓰면서, 마시는 것도 크게 부족하지 않게 알아서 잘 마시고 살았으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아주 오래전, 문학에 뜻을 두었던 젊은 시절에는 ‘글은 대체 왜 쓰는가?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는 말을 주절거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쓰는 것은 문학적인 글도 아니고 아주 아닌 것도 아닌 얼치기입니다. 글 쓰는 거 말고 다른 재주도 없긴 합니다. 그래서 허위허위 시난고난, 끈질기게 쓰고 있습니다.

쓴 것을 되돌아보고 다시 훑어보니 그 많은 글 중에서 오롯이 나의 언어인 것이 거의 없다는 데 놀라게 됩니다. 어디선가 끌어와 베껴 먹고, 다시 우려먹고, 크게 튀겨 먹은 게 대부분입니다. 지난해 소설가 신경숙 씨의 표절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불거졌지만, 크고 작은 표절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 문제는 혼성모방이니 패러디니 하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지식재산이나 저작권에 대한 인식과 보호/준수 개념이 부족합니다. 이론으로 잘 아는 사람들도 말과 실제가 달라 실망과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니 글을 쓰면서 이와 같은 문제들을 유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해 동안 쓴 글을 들척이며 인용과 표절의 차이를 재보고, 베끼기 혐의가 있는 대목들을 스스로 점검했습니다.  

그렇게 세밑을 맞는 동안 여러 사람이 책을 보내왔습니다. 한 해를 보내기 전에 뭔가 매듭을 짓고 정리하려는 마음에서 책을 낸 것으로 보입니다. 주로 에세이집인 책들을 펼쳐보며 많은 말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2015년 마지막으로 12월 30일에 받은 정진홍 울산대 석좌교수의 ‘짧은 느낌, 긴 사색’이라는 저서는 그야말로 긴 생각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특히 글쓰기 자체를 이야기한 프롤로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정확하게 요약할 자신은 없지만, 짧은 글이 환영받는 시대에 긴 글을 쓰는 괴로움과 그 의미에 대해서 정 교수는 아주 긴 글을 썼습니다. ‘왜 이렇게 길게 썼을까, 좀 간략하게 이야기하시지’ 하면서 읽었지만, 그분의 집필 의도는 바로 그것, ‘만연체(蔓衍體) 긴 글을 쓰고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에서 핵심적인 문장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분명히 짧은 글은 무릇 어질고 착하고 지혜로운 분[賢者]의 글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아주 낡은 투로 말한다면, 그 글은 아무래도 모르는 것이 많아 끝없이 묻고 깊이 살펴 알고자 하는 사람[學者]의 몫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 교수의 결론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니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기보다 그분의 말을 본받아 아래와 같은 게 아닐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게 좋겠습니다. ‘긴 글을 읽으면서도 느낌이 간헐적으로 튀어 행간을 메우고, 짧은 글을 읽으면서도 그것이 낳는 끝없는 사색의 가닥들을 놓치지 않는 경험이 내 삶을 채우고 이끌어갈 수 있어야 비로소 긴 글과 짧은 글이 빚는 갈등에서 우리는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책의 제목 ‘짧은 느낌, 긴 사색’의 고갱이인 것 같습니다. 긴 글과 짧은 글의 갈등이 긴 글과 짧은 글의 조화로 바뀔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요. 그런데 나는 글을 많이 쓰면서도 긴 글과 짧은 글의 문제를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일정한 분량으로 제한된 글을 마감시간 이내에 쓰는 데 익숙해져 주로 짧은 글을 써왔습니다. 읽기 쉽고 간명하게, 한 글자라도 더 절약하면서 쓰는 것만을 미덕으로 생각해온 것이지요.  

가능한 일인지 아닌지 몰라도 새해에는 나도 제법 긴 글을 쓰고 싶어집니다. 그러려면 내 숨이 길어져야 되겠지요. SNS상의 댓글과 분량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내용에서 댓글 수준과 다름없는 짧은 글에 혹하고 취하면 안 된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게 됐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다른 재주도 없으니 다만 성실하고 근면하게 글을 쓰면서 되도록 깊고 넓게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말해놓고 보니 ‘근면 자조 협동’을 내세웠던 새마을운동 구호나 어느 학교의 교훈 비슷한 것 같습니다. 글을 통하여, 글과 함께, 글 안에서, 글의 힘에 기대어 살고자 합니다. 이 대목은 천주교 미사의 ‘마침 영광송’을 베껴 먹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제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해피 뉴 이어 인사를 드립니다. 이 해피 뉴 이어는 어느 목사님이 말한 대로 Happy New Year가 아니라 Happy New Ear입니다. 내 멋대로 해석하면, 남의 말과 시대의 언어를 경청하는 귀, 그리고 즐겁고 복된 뉴스를 많이 들어서 담는 귀를 말합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편집국 (c1221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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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781324
'글심'은 천심 (2016-01-04 07:41:22)
合은 없고 反만 있다 (2015-12-31 10: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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