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그 마지막 날(12. 31.)에>
올해는 ‘추억이 많은 해’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2015년의 마지막 날(12. 31.)에 두 가지 일을 했다.
하나는 20여 년간 나를 괴롭혀왔던 비염의 치료수술을 오전 9시에 시술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후 3시 30분에 퇴원하자마자 아내의 과감하고도 새로운 도전을 위한 첫 걸음으로 상당한 경제적 부담과 위험을 무릅쓰는 계약을 한 건 체결한 것이다.
아내의 평생 숙원사업이다.
그런데 아내가 기어코 저질렀다.
뒤 치다꺼리는 내 몫이다.
비주격만곡증과 비염수술은 무사히 마쳤지만, 코 양쪽을 지혈솜으로 막아놓아 이틀간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한다.
수술 후에도 거즈 사이로 계속 피가 새어 나온다.
입으로만 숨 쉬는 것이 이렇게 불편한 줄 몰랐다.
목이 아프고, 입이 마른다.
음식 맛을 잘 느낄 수 없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숨 쉴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전에 읽었던 헬렌 켈러의 수필이 떠오른다.
<보기 위해서 눈을 감아 보아라. ‘보고자 하는 그 간절함’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든다.>
며칠만이라도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게 된다면, ‘어두운 암흑’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해 줄 것이고, ‘고요한 정적’을 들을 수 있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가르쳐줄 것이다.
그럼에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보기 위해서 눈을 감아 보아라.
당신이 만약 남들이 보지 못한 특별한 것을 보고 싶다면, 오감의 눈을 떠라.
육체의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진정으로 볼 수 있다.
‘보고자 하는 그 간절함’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든다.
1931년 발표된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의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가 어느 날 방금 숲 속을 산책하고 돌아온 친구에게 “무엇을 보았느냐?”라고 물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다(Nothing particular)"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친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한 시간 동안이나 숲을 거닐면서 눈에 띄는 것을 보지 못할 수 있을까.
은빛 자작나무의 부드러운 껍질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지고,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시원한 시냇물을 즐기고, 수북하게 쌓인 솔잎과 푹신하게 깔린 잔디를 밟을 수 있는데.
그러면서 “내가 사는 동안 유일한 희망이 하나 있다면 그 것은 죽기 전에 꼭 사흘 동안만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배우 이병헌이 모델로 나왔던 핸드폰 CF의 멘트인 “단언컨대 본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라는 말은 위 수필의 마지막에 나오는 글이기도 하다.
위 수필을 읽은 후로는 가슴 깊이 느껴지는 찡해오는 전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녀의 고요하고 어두운 과거가 그녀의 '시선'을 거치면서 얼마나 ‘풍요롭고 서정적인’ 과거가 되는지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헬렌 켈러에게 ‘이루어질 수 없는 간절한 꿈’이 우리들에게는 ‘일상’이다.
코 수술을 통한 고통의 후유증을 견디면서, 오감의 중요성을 느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아래 문장을 되새기면서 건강하게 살아있음에 진정으로 감사한다.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다.’
페친 여러분들도 2016년을 맞이하여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고자 하는 일 모두 이루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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