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제정된 변리사법에 ‘변호사 자격이 있으면 덤으로 변리사 자격을 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자동자격제도라 부릅니다. 전문가제도 초기에는 사람이 모자라므로 자동자격을 주는 제도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뒤 정상으로 전문가가 배출되기 시작하면 자동자격은 없어집니다. 광복 뒤 수많은 자동자격이 있었지만 90년대에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끝까지 없어지지 않고 있는 게, 변호사에게 주는 변리사 자동자격이었습니다.
2014년 12월 변호사 출신인 이상민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폐지 법안을 냈습니다. 대한변리사회는 2015년 4월부터 국민서명운동에 나서면서 국회의원을 설득했습니다.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움직이면서 우리 국회의 여러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그 모습을 정리합니다.
한 사람 반대가 열 사람 찬성보다 힘세다.
국회 각 상임위에는 법률심사소위원회가 있고, 법안이 제출되면 여기에서 심의합니다. 제출된 법안에 모두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상식으로 생각하면 다수결로 정할 것 같지만 국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그 법안은 더 나아가지 않습니다. 전원이 합의해야 통과시기는 관행이라 합니다. 장점이 있을지 모르지만 악용될 여지가 참 많습니다. 열 사람 찬성보다 한 사람 반대하는 쪽이 힘이 더 셉니다. 이런 의결방법은 정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선수에게 심판을 맡긴 격
변호사에게 그냥 변리사 자격을 주는 것을 없애는 법안이라면, 변호사 출신 의원은 반대하기 마련입니다. 법안 심의가 공정하려면 변호사 출신은 이런 법안 심의에 참여하면 안 됩니다. 소송에서는 이해관계가 있는 판사는 그 사건을 맡지 못합니다. 국회에서는 이런 제한이 없습니다. 이런 제척이나 기피제도가 국회에도 필요할 텐데, 본인들은 말이 없습니다.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 심의하면 안됩니다. 설령 그런 때가 있더라도 그 의원 스스로 조심하고 삼가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찾기 어렵습니다. 선수가 심판해도 되게 심의하면 곤란합니다.
도끼자루 썩든 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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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회기동안 법안을 심의하는 소위원회가 열리는 날은 1년을 통틀어 10여 일 정도인 듯합니다. 제출되는 법안이 그렇게 많은데, 심의 일수가 절대적으로 모자랍니다. 심의일이 잡히면 하루에 올리는 법안이 보통 50~60건입니다. 열심히 심의해도 처리할까 말까 합니다. 그러� 심의 중에 쟁점이 있는 법안이라도 걸리는 다음 법은 그 자리에 서 버립니다. 예정 기간에 처리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밤새워 심의하든지, 심의 날을 더 잡아 계속 하는 게 상식입니다. 그러나, 국회에는 그 기간 넘기면 법안이 남아있든 말든 개의치 않고 끝내더군요. 법안이 처리되지 않아 한숨 쉬는 국민이 많습니다. 그들 눈에 보이지 않나 봅니다. 법안 하나하나마다 엄청난 비용이 들어갔습니다. 법안마다 제출할 만한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데도, 심의조차 못 받고 시들어버리는 사태가 자주 있습니다.
법사위는 왕 위에 더 상왕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모두 법사위로 넘겨 ‘체계와 자구 심사’를 받습니다(국회법 제86조). 이 절차는 다른 상임위의 법안 처리 과정을 보면 형평에 맞지 않습니다. 더 문제는 이 절차를 악용하는 것입니다. 특히 변호사 업역을 건드리는 법안은 법사위를 지나갈 수 없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법사위가 심의했다 하더라도 ‘체계와 자구’가 항상 옳을 수 없고, 다른 상임위에서 법안의 ‘체계와 자구’가 꼭 틀렸다 할 수 없듯이, '체계와 자구’심사는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국회에 ‘체계와 자구’를 검토할 기구를 두고, 이 기구가 검토하는 게 맞습니다. 더 상왕을 만나지 않게 제도를 손봐야겠습니다.
버틸수록 이익인 곳
있던 것을 바꾸려고 새로운 법안을 냅니다. 지금 있는 것이 좋은 사람은 현 제도를 바꾸지 않으려 합니다. 버티면 버틸수록 기득권자가 누리는 구조에서는 개선이나 혁신하기 어렵습니다. 법안을 심의하지 않고 질식사시키는 게 기득권자에게 이익이고, 기득권자가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열심히 심의하려 하겠습니까? 매 회기마다 그렇게 버려진 법안이 7천여 건이나 됩니다.
헌법을 어기면서도 선거구를 결정하지 않는 것은 기득권자에게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시간을 넘김으로써 생기는 불이익이 기득권자에게 가게 하여야 합니다. 헌법이 정한 시한 안에 선거구를 합의 조정하지 못하면, 현역 의원은 선거구 결정에 간여하지 못하게 하고 제3 기구가 획정하게 규칙을 정한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겠지요.
자동자격폐지법안은 11월 19일 산업위 소위에서 한 사람이 끝까지 반대하여 심의가 보류될 뻔했습니다. 이에 위원장은 더 심의를 늦출 수 없다면서 합의할 것을 요구하였죠. 이렇게 하여 소위에서 대안을 마련하였고, 이 대안을 법사위에 넘겼습니다.
법사위 간 대안은 전체 회의에서 두 차례 무산되다가, 12월 30일 법사위 전체회의 극적으로 통과, 12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됐습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벼랑 끝을 지나왔습니다. 되돌아보면 아찔합니다. 이처럼 분명하고 정당한 것도 이렇게 고치기 힘듭니다. 힘이 약한 사람은, 그 법에 이해가 걸린 상대가 있다면 입법으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국회 규칙은 공정해야 합니다. 나라와 사회의 이익이 먼저여야 합니다. 사회의 이익보다 특정 직역이나 개인의 이익을 먼저 챙겨도 되는 체제는 앞날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힘의 크기가 아니라 올바름이 기준이 되고,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의 이익이 먼저인 사회로 가야 합니다.
직접 경험한 사례를 통해 국회의 현실을 살펴봤습니다. 제발 이것이 특이한 사례이면 좋겠습니다. 이런 보기가 더 오르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필자소개 : 고영회(高永會)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과실연 수도권 대표, 세종과학포럼 상임대표, 대한변리사회 회장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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