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토텐햄은 작은 읍과 같습니다.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된 중요한 동기가 있었지만 그보다도 이 북쪽 동네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집들이 간간이 서있는 언덕, 울창한 숲과 넓은 평야,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 멀리 국립공원엘 가지 않더라도 가을이면 단풍이 찬란하여 근처에 차를 몰고 가거나 걷기를 해도 행복함이 넘칩니다.
약 200가구가 사는 이 단지는 55세 이상 연령대의 사람들만 살 수 있는 곳으로 클럽하우스의 수영장, 테니스장, 운동실(GYM), 도서실, 휴게실과 식당을 이용할 수 있고 하늘과 구름을 보며 언덕을 한 바퀴만 걸어도 운동이 됩니다. 단지 안의 사람들끼리 모임이나 게임을 하며 소일을 할 수 있어 정년퇴직을 한 캐나다 노인들에게는 참 좋은 곳입니다.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숲이 가까이 있으며 집 주변의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퇴직한 중산층 노인들이 재산을 정리한 후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고 노후를 편안히 보내는 곳입니다.
내가 이 단지로 이사 온 지도 벌써 6년, 그 사이 세상을 떠난 노인들이 적지 않았으나 모두 무난하게 마지막 여생을 보내다가 갔습니다. 그러나 평화로웠던 이 단지에 충격적인 일이 생겼습니다. 경찰차들과 구급차가 들이닥치더니 10여 명의 경찰이 우리 집 앞까지 진을 치고 오후 내내 떠나지 않아 무서웠습니다.
며칠 후 이웃이 전한 소식은 이렇습니다. 한 노인이 관리비와 전기, 도시가스비를 수개월간 밀렸는데 가스선을 닫기 위해 그 집을 방문한 가스회사의 직원을 총으로 위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경찰이 동원됐고 문을 강제로 열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경찰에게 총을 쏜 후 자신도 총으로 자살했다고 합니다. 부인이 5년 전 병으로 먼저 사망한 후 노인 혼자 살고 있었는데, 주민들 사이에 떠도는 말은 노인의 딸이 이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을 저당 잡혀 돈을 융자해 쓴 후 융자금을 갚지 않았다고 합니다.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딸이 융자금만 가져간 후 소식이 끊기자 집을 팔아 거처를 옮길 수도 없는 아버지는 사면초가에 빠져 생활고에 시달린 것입니다.
그가 받은 캐나다 정부의 노인연금과 저소득층 보조 연금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다른 연금 없이 이 두 연금에만 의존해 살아왔다면 이것만으로는 살고 있는 집을 유지하며 공과금을 내거나 생필품 사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캐나다에서 노인의 자살 사건이 많지도 않고 또 캐나다 노인들이 노후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집까지 저당 잡혀 자식에게 돈을 주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에 상당히 의외의 사건이었습니다. 대체로 이 단지 안에 사는 노인과 그의 자식들은 서로 금전적인 도움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도 때가 되면 자식이 손자손녀들과 함께 부모를 자주 찾아오는 이상적인 캐나다인들입니다.
부동산 회사의 직원인 캐나다인 스티브를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과 비교해 보면 순수한 느낌이 듭니다. 30세가 된 그의 얘기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스티브의 아버지가 35년 전 땅이 넓은 변두리의 집을 구입해 그 자녀들이 성장할 때까지 살았는데 아버지 사후 120만 불에 팔렸습니다. 어머니가 그 돈을 은행에 저축하고 누나의 집으로 옮긴 것은 아무래도 자신이 모시는 것보다 누나가 모시는 게 나을 것 같았고 어머니 또한 그러길 원했다는 것입니다.
100만 불이 넘는 큰돈이 생긴 어머니가 스티브에게 준 금액이 얼마였는지 궁금해서 물었지만 스티브의 대답과 표정은 너무 태연했습니다. 그 돈은 어머니의 돈일 뿐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으며 누나가 어머니를 모시니 어머니가 알아서 쓰실 것이고 자신은 관심도 없다고 했습니다. 스티브는 결혼할 때도 부모의 도움 없이 치렀으며 현재 아내와 살고 있는 융자를 낀 집도 아내와 둘이 벌어서 샀습니다. 물론 이것은 캐나다인들의 기본 정서로 그들은 대학과 결혼 그리고 결혼한 후 살 집까지 부모에게 의지하는 한국의 자녀들과는 매우 다릅니다.
아직 캐나다에선 돈 때문에 부모 형제를, 아내 남편을 죽이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고 부모 재산을 탐내거나 재산을 가져간 후 부모를 버리는 일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는 한국보다 훨씬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노인의 자살 소식은 비극이었습니다. 요즘 미국에서도 노인들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의 소식에 의하면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살률이 이전 세대나 이후 세대보다 훨씬 높다고 합니다. 매우 우울한 소식으로 부모와 자녀 부양에 힘을 쏟느라 생계의 위험지대에 놓이게 된 베이비부머들이 절망감을 극복하지 못해 자살을 선택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노후세대는 어떤지요?
불효소송법, 부모의 유산을 증여받은 후 부모를 모시겠다는 애초의 약속을 저버린 자식들에게서 유산을 돌려받는 법까지 만들어야 하는 한국의 소식은 처연하기만 합니다. 한국 젊은이들의 정서는 미국이나 캐나다와 매우 다른 것이 대학비용과 결혼비용을 부모가 대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부모가 노후의 삶을 저당 잡힌 돈일지라도 자신들이 결혼해 살 주거지를 마련해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그런 비용을 부담해주지 못하는 부모는 부모의 자격이 없는 것처럼 여기는 젊은이들도 있다고 하니 슬픈 일입니다.
가까운 일본, 중국,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캐나다로 이민 온 한국인들조차 캐나다에 살면서도 한국적 정서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캐나다 이민자 중 한국 노인들의 빈곤율이 가장 높다는 통계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더욱 실망스런 것은 돈 때문에 형제 부모를 죽이는 패륜적인 일들이 한국에서 자주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모의 집을 빼앗거나 부모를 버스터미널에 버리고 간 자녀, 홀로 살고 있는 어머니의 집을 빼앗아 음식을 구걸하도록 만든 자녀, 재산을 빼앗기 위해 정신병원에 부모를 버린 자녀들은 괴물입니다.
이런 괴물들이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 교육을 어떻게 한 것일까요? 괴물을 키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비 인륜적이 일이 횡횡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사회, 괴물만 양산하는 국가가 계속 성장하고 세계에 존립할 수 있는지도 걱정입니다. 이런 이상한 사회 현상이 어떻게 한국사회에 정착되었는지는 부모 세대들의 자녀 교육에도 문제와 책임이 있습니다. 매사 자식을 위주로 부모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도 자녀에게 중요한 자립심을 키워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산 문제로 생기는 불화 또한 부모가 노후에 홀로서기 할 각오를 하지 않았거나 유산을 죽기 전 먼저 증여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죽기 전 자식에게 증여할 생각도 자식에게 의지하고 살 생각도 하지 않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입니다.
필자소개 : 오마리
미국 패션스쿨 졸업, 미국 패션계에 디자이너로 종사.
현재 구름따라 떠돌며 구름사진 찍는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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