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된 정치 혐오와 공천과정의 원칙 없고 볼썽사나운 특정인사 배제 등으로 투표 무용론, 선거 거부감이 어느 때보다 강했는데도 잠정 집계된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58.0%로 집계됐습니다. 2012년의 19대 총선 투표율 54.2%보다 3.8%포인트 높고 2008년의 18대 총선 투표율 46.1%보다는 11.9%포인트나 높습니다.
이처럼 투표율이 높아진 것은 사전투표제가 도입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2030세대를 중심으로 적극적 주권행사를 통해 국회와 정치를 바꾸려는 유권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지지자 없음’ 기표란을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기될 정도로 거부감이 컸지만 선거가 임박하면서 그럴수록 더 적극적으로 투표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던 것 같습니다.
이번 선거를 박근혜 대통령의 처지에서 살펴봅니다. 박 대통령은 선거 전날 국무회의에서 국민들에게 “나라의 운명은 결국 국민이 정한다는 마음으로 빠짐없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20대 국회를 만들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집권 3년을 넘겨 레임덕이 가속될 수 있는 박 대통령에게 이번 선거는 후반기 국정 운영의 성패를 좌우할 분수령이었습니다.
그래서 후반기 국정 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줄 강력한 집권여당이 필요했지만, 기대와 정반대 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타격이 클 것입니다. 여당이 과반수를 넘었던 19대 국회에서도 법률 제정과 개정이 어려워 기회만 있으면 국회를 질타하고 타박했던 박 대통령으로서는 더 답답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총선 참패를 둘러싼 새누리당 내의 책임론과, 친박계-비박계간 갈등도 고조될 것으로 보여 박 대통령은 안팎 곱사등이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결과는 자업자득인 측면이 강합니다. 원래 총선 공천까지가 문제이지 선거가 끝나면 여당에 대한 대통령의 영향력과 장악력은 약해지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대화와 소통이 없는 정치를 해오다 정체불명의 정체성이라는 잣대로 특정 인사들을 배제한 공천까지 했으니 스스로 국민들의 반발과 정부 심판론을 부추겨 여당이 제2당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한 꼴입니다.
임기를 무리 없이 마무리하고 나라를 원활하게 이끌어가려면 박 대통령은 이제 크게 달라져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식으로 의회와 국민을 대한다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민심이 변했다는 것을 뼈아프게 인식하고 총선 참패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번 총선에서 두드러지는 변화는 호남 지역에서 최초로 복수의 보수 여당 후보(이정현 정운천)가 당선되고, 대구와 부산에서 야당 후보들(김부겸 김영춘 등)이 당선되는 '지역패권의 일부 붕괴' 현상입니다. 특히 여당의 텃밭이던 부산 울산 경남 일대에서 유권자들의 ‘반란’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대통령은 이런 변화를 받아들여 개각과 같은 인사정책에 반영하고, 야당 지도자들과 의원들을 직접 만나 대화정치를 하기 바랍니다. 지금처럼 멀리 떨어져 앉아 국민들을 상대로 방백을 하듯 국회 탓만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년 12월의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지배력을 확보하고 싶다면, 퇴임 후에도 정국 운영에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다면 야당을 비롯한 반대세력과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교류해야 합니다. 박 대통령에게는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박 대통령의 행동은 정치랄 것도 없는데, 남은 기간이라도 좀 달라지기를 간절하게 촉구합니다. 달라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니 본인의 말대로 국민을 잘 섬길 수 있도록 스스로 크게 달라져야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필자소개 :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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