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독도를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명백한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름도 ‘다케시마(竹島)’입니다.
한국에 의한 점거가 불법이라는 것이지요. 일본 외무성의 홈페이지에도 그렇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어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주선으로 처음 공식 대면했습니다만 이러한 내용이 바뀔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양국 지도자들이 모처럼 얼굴을 맞댔다고 해서 그동안 껄끄럽던 관계가 단숨에 풀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독도 영유권을 포함해 과거사 문제를 바라보는 기본 인식 차이가 작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베 총리가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완강한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무라야마 및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방침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무라야마 및 고노 담화 계승 방침도 미국 측 권유에 등 떠밀리듯 마지못해 발표한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박 대통령 취임 이래 1년이 지나도록 한일 정상회담을 기약할 수 없었던 것이 바로 그런 때문이었겠지요. 불쑥불쑥 터져나온 망언으로 양국 관계가 풀릴 듯하다가도 다시금 얼어붙었던 기억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더구나 종군 위안부 문제와 교과서 왜곡,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불씨가 여기저기 잠복해 있는 상황입니다.
동해냐, 일본해냐 하는 표기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외무성의 홈페이지를 다시 인용하자면, “최근 들어 일본해의 단독 호칭에 관하여 극히 일부 나라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일본해(Sea of Japan)’라는 이름이 일본의 식민지배 당시이던 1929년 국제수로기구(IHO)에서 공인된 이래 지금껏 고쳐지지 않은 채 침략의 유산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배경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얘기나 다름없습니다.
일본 정부는 “일본해가 국제적으로 확립된 유일한 호칭이라는 점은 세계 각국의 고지도 조사에서도 확실히 알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또한 사실과 어긋나는 얘기입니다.
조선에서 제작된 지도들을 젖혀놓더라도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 지도들 자체가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하고 있었습니다.
에도 시대에 만들어진 신정만국전도(新訂萬國全圖)를 비롯해 신제여지전도(新製輿地全圖), 지구만국방도(地球萬國方圖) 등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들 지도에서 ‘일본해’라는 명칭은 ‘대일본해(大日本海)’라는 표기로 일본 열도의 동쪽 바다를 가리키고 있을 뿐입니다.
대양을 향해 뻗어나가려는 제국주의의 모습을 보여줄망정 동해의 원래 이름이 ‘일본해’였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외국 고지도에서도 이탈리아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가 1602년 제작한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에 ‘일본해’ 표기가 처음 등장합니다만, 이후 조선의 존재가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오히려 '코리아 바다'라는 명칭이 통용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르투갈의 천체학자인 고딩유가 1615년 제작한 아시아 지도에 동해가 ‘Mar Coria’로 표기되었고, 영국 더들리가 1647년 제작한 지도에 ‘Mare di Corai’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이 그러한 사례입니다.
더 나아가 프랑스의 지도 제작자인 다네가 1760년 작성한 지도에 동해는 ‘Mer de COREE’로 표기되었으며, 영국의 새뮈얼 던이 1774년 그린 일본 에도막부 당시의 지도에도 ‘GULF of COREA’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소유권 분쟁에서 원래의 임자를 가려주는 등기문서라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시작된 ‘동해(East Sea)’ 병기 법안 움직임이 뉴욕, 뉴저지, 캘리포니아주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고지도의 증거 덕분입니다.
일본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동해 이름을 되찾으려는 현지 교민들의 집단 청원이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지만, 이러한 자료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애당초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입니다.
그런데도 일본 외무성이 고지도 운운하며 여전히 ‘일본해’ 이름을 고집하는 것은 분명한 자가당착입니다.
때마침 이러한 고지도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기에 하는 얘기입니다.
지난주부터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동해 고지도’ 특별전에는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지도 70여점이 전시되어 동해가 역사적으로 한민족의 왕성한 활동 무대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해 국토지리정보원, 국가기록원, 독도박물관 등이 관련 전시회나 발표회를 가졌지만 이번 전시회는 그중에서도 규모가 큰 것으로 꼽힙니다.
이번 서울 전시회가 끝나면 미국과 일본에서도 순회 전시가 추진될 것이라니, 도쿄 전시회에서는 과연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지 미리부터 궁금합니다.
공무에 바쁘시긴 하겠으나 아베 총리께서도 전시회에 한번쯤 들르시는 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네덜란드 방문길에 암스테르담의 안네 프랑크 박물관을 찾아 최근 도쿄에서 벌어진 ‘안네의 일기’ 훼손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 것처럼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용기있는 선택으로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앞서 지적된 외무성 홈페이지 기록의 잘못된 부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임도 물론입니다.
필자소개
허영섭
언론인, 칼럼니스트. 저서로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한국과 대만, 잠시 멀어진 이웃’(e-book)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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