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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6년01월11일 07시37분 ]

 

지난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때였습니다. 어느 TV 방송에 서울엔 산이 있다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어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정말 도시를 감싸고 있는 크고 작은 산들은 도심 한복판을 가르는 한강과 함께 서울의 큰 자랑입니다. 주말마다 등산로를 메우는 시민들의 경쾌한 발걸음, 밝은 웃음에서 건강한 서울을 엿보게 됩니다.

 

제주도의 올레길이 각광받으면서부터는 육지 여기저기에도 올레길을 본뜬 둘레길이 만들어졌습니다. 대도시는 물론 지방 소도시까지 경쟁하듯 둘레길을 만들었습니다. 험한 등산로에서 땀을 씻으며 가슴 깊이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기분도 상쾌하지만 산기슭 숲을 연결한 둘레길을 유유자적 걷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사실 그런 재미는 인파로 붐비는 도심 인근 둘레길보다 한적한 시골길 쪽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정된 일정이 하나도 없이 아주 한가한 어느 늦가을,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던 적이 있습니다. 이럴 때 북적거리는 도심이 아니라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보면 어떨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기왕이면, 하는 마음으로 시골 가는 버스를 잡아탔습니다. 도시 경계를 벗어나 한참 달리던 버스가 어느덧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천진암으로 가는 길목쯤에서 내렸습니다. 천진암까지는 걸어가 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걸어가면 갈수록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풍광이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붉게 물든 단풍. 사철 푸른 잣나무와 아직 노란 잎을 다 떨구지 못한 낙엽송이 빚어내는 기묘한 색채의 대조. 그림엽서에 그려진 것과 똑같이 아기자기한 서구풍의 펜션. 무너질 듯 힘겹게 버티고 선 시골동네 방앗간

그러나 그렇게 낭만적인 시골길에 도시민들은 예상치도 못하는 아찔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왕복 겨우 2차선 도로에 보행객을 위한 보도라고는 아예 설치되어 있지도 않은 것입니다.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길을 걷다가는 자칫 목숨을 위협당할 만큼 위태로운 순간을 맞게 됩니다. 어느 지역 지방도로나 국도조차도 마을과 마을 사이를 사람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보도가 온전히 이어진 곳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몇 번이나 옷깃을 스칠 듯 위험하게 지나가는 자동차에 그만 혼비백산했습니다. 차들은 마주 오는 차가 없을 때엔 그나마 중앙선까지 넘나들며 보행자를 피해 조심스럽게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왕복차선 양편으로 마주 지나가게 될 때엔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치 보행자를 덮칠 듯 위험하게 스쳐 지나가곤 했던 것입니다.

 

아무래도 위험하고 흥도 깨어져 천진암까지의 도보 여행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한참이나 기다려 시골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올레길도 좋고 둘레길도 좋지만 정말 절실한 건 안전한 시골길이 아닌가. 이 아름다운 시골에 꼭 있어야 하지만 꼭 빠지고 마는 게 바로 마을과 마을을 잇는 보도, 사람이 지나다니는 인도임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오래전 언론에 보도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시골청년 하나가 술 한 잔 걸치고 트럭을 몰아 집으로 가고 있었지요. 술김에 차가 오른편으로 쏠리며 그만 길 가던 여인을 치어 숨지게 하고 말았습니다. 뒤늦게 숨진 이가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게 된 청년이 대성통곡을 했던 사고였지요. 인도가 따로 없다 보니 같은 마을 알 만한 사람 사이에서도 뜻하지 않은 비극이 흔하게 벌어지곤 한답니다. 어두운 밤 서로의 위치를 가늠하지 못해 멀쩡하던 사람이 이웃집 경운기에 치여 하루 밤새 불구가 되기도 합니다.

한강변을 따라 남한강, 낙동강까지 이르는 자전거도로가 생긴 지도 꽤 됐습니다. 이곳저곳 지역마다 산기슭에는 둘레길, 하천가에는 공원과 더불어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요즘엔 농촌, 산촌 구석구석 깊숙이까지 적잖은 돈을 들여 아스팔트 차도를 깔아 놓았습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하지만 도외시되고 마는 시설이 바로 사람 다니는 길입니다. 꼭 국도나 지방도로 곁이 아니더라도, 마을 사이의 뒤안길만 옳게 연결해 주어도 안전한 보행이 보장될 텐데. 결국 필요한 안전시설보다는 눈에 비치는 효과가 큰 전시물에 몰두하는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안전불감증은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병이 아닌가 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필자소개 :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편집국 (c1221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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